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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여행·맛집

목포 고하도 용머리(고하도복지회관~용머리~고하도복지회관)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가운데

그 비를 맞으면서 홀로

고하도 둘레숲길을 걸었다.

 

용이 날개를 펴고

하늘로 승천하는 전설을 지닌

고하도 용머리는

밤에 보면 화려한 오색등이

바닷물에 비춰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등산로는 용의 등을 타고

가는 것과 같은 지형으로

산행시 용의 기운을

듬뿍 받을 수 있는 곳이다.

 

 

 

▣ 산행일시 : 2014. 8. 14(목) - 휴가 마지막 날

▣ 기상상황 : 비가 오면서 안개자욱

▣ 산행장소 : 목포 고하도

▣ 참여인원 : 나홀로

▣ 산행코스 : 고하도 복지회관~이충무공유적지~둘레숲길 입구~큰덕골저수지 삼거리~래박개(정상)~숲길삼거리~용머리길 입구~용머리~공생재활원 신관~공생재활원 본관~짱골저수지~농로~고하도 복지회관(원점회귀)

▣ 산행거리 : 7.8km(Gps 측정)

▣ 산행시간 : 2시간 5분(10:15~12:20)

▣ 산행사진

고하도 복지회관

 

 

 

 

고하도 용머리는 목포에서 약 2km 떨어진거리에 있다. 목포시의 남쪽 해안을 감싸안은 듯 서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고하도는 높은 산(유달산) 밑에 있는 섬이라 하여 고하도 (高下島)라 불렸으며, 보화도 (寶化島), 고하도(高霞島), 칼섬이라고도 불리었다.


삼국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전하며,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에 의해 전략지로 활용되어 왜적의 침투를 막아낸 곳으로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충무공기념비(지방유형문화재 39호)가 있다.


또한 이 지역을 이충무공유적지(지방기념물 10호)로 지정하여 충무공의 뜻을 기리고 있다. 목포항의 관문인 고하도 용머리는 유달산 낙조대나 일등바위의 전경이 아름다우며 밤에는 바다와 어우러진 오색등의 찬란한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사공의 뱃노래가 절로 울려 퍼지는 저녁 노을속 용당귀범,

목포 앞 바다의 용 고하도

 

관운각은 유달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요. 명칭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비가 온 후 안개가 끼면 산허리에 구름이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위치라서 볼 관자에 구름 운자를 써서 부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곳에서는 목포항 입구에 길게 용처럼 늘어진 '고하도'가 잘 보인다.


고하도는 목포시의 남해안과 마주보고 있는 섬이며 목포 앞 선창에서 약 2km쯤 떨어진 곳에 있다. 목포와 마주하고 있는 섬의 지형이 용의 형상을 하고 있다하며 용머리 또는 병풍처럼 펼쳐있다하여 병풍바위, 병풍도라고 불리기도 하며 순수한 우리말로 칼섬이라고도 한다.

충무공이 1579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가지 108일 동안 주둔하여 군사를 재정비했던 곳이다. 이충무공은 이섬을 전략지로 이용 임진왜란 때 왜적의 육지 침입을 막아낸 곳이다.

 

장군이 진을 쳤던 흔적과 그의 공적을 가리기 위하여 세워진 모충각이 이곳에 있다. 1722년 8월에 충무공 5대손인 이상봉에 의해 건립한 유허비 비문은 남구만이 친하고 글씨는 조태기님이 썻다.

남구만은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해는 상기 아니 얼었으냐.
재 넘어 사래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냐'이라는 시조를 지은 분이다.

고하도는 일제에 의하여 육지면의 시험재배에 성공한 곳이기도 하다.

 

 

 

 

고하도의 뒷도랑 마을은 일제시대 조선소가 있었다.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구덩이들이 있어 함수를 보관하기 좋았으며, 배를 정박하기도 좋아 사산동뿐만 아니라 목포 일대의 오줌과 똥은 모두 수거해 '똥배'로 이동하여 함수를 이곳에 모아 두었다 거름이 필요할 때 퍼다 밭에 뿌려 야채농사를 찾지 않았던 것이다.

 

'공생재활원' 일제강점기인 1938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전국의 불량아동을 수용하기 위해 건립된 감화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후 감화원은 '국립목포학원'으로 개칭되고 다시 '재생원'으로 개칭되어 고아들을 수용하다가 1960년대 폐원되었으며, 1984년 공생재활원이 건립되었다. 대도 조세형도 어린시절 이곳 감화원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야광하면 고하도 용머리죠. 목포항의 관문인 고하도 용머리는 밤에 보면 '화려한 오색등'이 바닷물에 비춰 용이 날개를 펴고 하늘로 승천하는 듯합니다. 용이 우아한 모습으로 여러분을 유혹한다고요.

주칭야광'이라는 말은 '구슬은 야광이라 일컬어지는 것'이 제일이라는 말이지요. 구슬은 본래 붉은 옥석을 가공하여 동그랗게 만든 갓을 말하였는데 후에는 동그란 보석을 통칭하게 되었죠.


야광'이라는 말은 중국 육조시대 '지괴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간보의 수신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옛날 초나라의 신하 수후는 외출하다 우연히 소치는 목동이 한마리 뱀을 죽이는 것을 보았는데, 수후는 뱀이 너무 불쌍해서 깨끗이 닦아 약을 발라주었더니 살아서 돌아갔답니다.

 

어느날 밤 수후의 집 뜰에 밝은 불빛이 환하게 비췄답니다. 수후는 도적이 들어 횃불을 밝힌 줄 알고 칼을 들고 불빛이 있는 곳을 향하여 다가갔어요.

 

문밖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려 문을 열자 뱀 한 마리가 구슬을 떨어뜨리고 사라졌다지요. 그 뱀은 바다속 용왕의 아들로 전에 목숨을 구해준 보답을 구슬로 했는데. 그 구슬이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후가 그 구슬을 초나라 왕에게 바치니 왕은 그 이름을 '야광'이라 하였답니다.

 

 

 

염전

 

 

 

↓ 고하도 이충무공 유적지

 

 

 

 

 

 

자연보호신고소

 

 

 

 

 

 

 

 

 

 

이충무공 기념비

 

 

 

 

 

임진왜란때 이충무공이 왜적의 침투를 막아내기 위하여 108일간 주둔했던 곳을 기념하기 위해 고하도에 모충각과 이충무공기념부(지방유형문화제 제 39호)가 서 있으며, 유달산 입구에 동상이 있다.

 

고하도는 목포시내에서 약 2km 떨어진 남서쪽에 위치한 반달 모양의 섬으로 목포시의 남쪽 해안을 감싸안은듯 서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북쪽비탈은 바다 건너 유달산과 마주하고, 동쪽으로는 영산강 하구둑과 목포공항을 마주하고 있다.

고하도는 임진왜란때 이충무공에 의해 전략지로 활용되어 왜적의 침투를 막아낸 곳으로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충무공기념비(지방유형문화재 39호)가 서 있다.

 

1722년 충무공의 5대손인 이봉산이 건립하고 남구만이 비문을 짓고 조태구가 글을 쓴 것이며, 비신에는 일제때 일본 군인이 쏜 총탄 자국이 있으나 거의 완전한 상태이다.

또한 이 지역을 지방기념물 10호 이충무공 유적지로 지정하여 충무공의 뜻을 기리고 있다. 충무공은 명량승첩 후 1597년 10월 29일 이곳으로 와 진을 치고 그 이듬해 2월 17일 고금도로 옮기기까지 108일간을 주둔하며 군량미를 비축하고 전력을 재정비하였다.

섬의 둘레는 불과 12km에 지나지 않지만 그만큼 이 섬이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이곳이 무너지면 호남의 곡창지대를 흐르는 영산강을 왜구에게 내어주는 샘이었기 때문이다.

 

목포의 유달산과 함께 충무공의 전설적 일화와 호국 얼이 서린 섬이며 울돌목과 제주도로 빠진 해로이기도 한 이 곳은 고화도, 보화도, 비노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다.

 

목포 사람들은 이충무공 기념사업회를 조직하여 매해 4월 28일이면 이곳에서 공의 정신을 추모하는 탄신제를 봉행하고 있다.

 

현재 여객선 터미널에서 8차례 선박이 왕복운항되고 있어 누구나 쉽게 찾아가서 고하도의 석양을 바라볼 수 있다. 넘실대는 물살을 가로질러 고하도를 가노라면 잠시 세상시름 잊고 옛날에 잠길 수 있을 것이다.

 

 

 

 

 

 

 

 

 

 

 

고하도 둘레숲길 안내도

 

큰덕골저수지 갈림길

 

 

 

 

정상의 삼각점

 

 

 말바우 

 

 

 

 

 

 

 

 

 

 

고하도에서 바라본 유달산

 

 

 

목포대교

 

 

용머리 삼각점

 

 

 

 

 

 

 

 

용머리에서 바라본 유달산

 

 

 

 

 

 

 

 

파도를 갈르는 배

 

 

 

 

 

해변가 첫번째 굴

 

 

해변가 두번째 굴

 

 

 

 

 

 

 

 

 

바닷가 풍경

 

 

 

 

 

 

공생재활원 신관

 

 

폐가

 

 

공생재활원 본관

 

 

 

 

◆ 공생재활원, 고아원

고하도 용머리로 가기 전 공생재활원이 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전국의 불량아동을 수용하기 위해 건립된 감화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후 국립목포학원, 다시 재생원으로 개칭돼 고아들을 수용했다.

 

1960년 재생원은 폐원됐으며, 1984년 공생재활원으로 건립됐다. 대도 조세형도 어린 시절 이곳 감화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박보영 공생재활원 선생은 “1984년 개원해 현재 120여 명의 지적장애인이 생활하고 있다. 공생재활원은 목포의 공생원과 같은 재단”이라고 말했다.

목포 공생원은 1928년 윤치호 전도사가 기독교정신으로 지은 건물이다. 1938년 그는 일본인 여성 윤학자(다우치지즈꼬) 여사와 결혼했으나 6.25 사변 당시 행방불명됐다. 그 후 윤학자 여사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6.25 사변 시 전쟁고아를 보호하는 등 희생과 봉사로 아이들을 키웠다.

박 선생은 “많은 아이들을 보호하다 보니 장애 분류와 전문화된 시설의 필요성을 느껴 현재는 전국에 요양 및 지적장애인 시설 등이 운영되고 있다”며 “일본에도 윤기 회장(윤치호 전도사의 장남)이 노인복지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나라 노인을 대상으로 했으나 현재는 일본 현지인들도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생원을 시작으로 한 공생복지재단은 아동복지 장애인복지 노인복지 직업전문학교 정신보건복지 등 다양한 복지를 선도하는 재단으로 사회에 봉사하고 있다.

 

 


 

 

 

 

 

고하도마을 전경

 

 

전라남도 목포시의 유달동에 속하는 섬이다. 목포 시내에서 남서쪽에 위치한 섬으로 반달 모양이며, 동쪽으로 영산강 하굿둑과 마주하고 있다. 섬 전체가 낮은 산지(최고 고도 77m)이며, 북동쪽 사면은 비교적 경사가 급하고 남서쪽 사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해안으로 이어져 있다.

 

해안은 곳곳에 소규모의 곶과 만이 발달하여 드나듦이 심하고, 만 안의 간석지는 방조제를 쌓아 농경지와 염전으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기후가 온난습윤하고 무상기일이 200여 일이 넘어 우리나라에서 육지면(陸地棉)이 처음으로 재배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이 나오며, 『여지도서』(나주)에 "둘레는 12리이다. 호적에 편성된 민호는 55호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호구총수』와 『호남읍지』에 섬의 이름과 인구가 기록되어 있다. 『청구도』와 『대동여지도』에도 고하도가 기재되어 있다. 삼국 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에는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진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1963년 무안군 이로면이 목포시로 편입되면서 달리도, 외달도 등과 함께 충무동에 편성되었다. 높은 산(유달산) 밑에 있는 섬이라 하여 고하도라 불렸다고 한다. 예전에는 보화도(寶化島), 고하도(高霞島), 고하도(孤下島), 비노도(悲露島), 칼섬 등으로도 불려 왔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에 의해 전략지로 활용되어 왜적의 침투를 막아낸 곳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충무공기념비(도 문화재 제39호)가 있어 충무공의 뜻을 기리고 있다. 섬에 탕건바위놀이와 강강술래가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하도 [高下島, Gohado] (한국지명유래집 전라 · 제주편 지명, 2010.12, 국토지리정보원)

 

 

바닷가를 걸어 오는데 운저리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많고

들녘에는 벼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이제 곧 가을로 접어들 시기인것 같다.

오늘로 해서 금년 휴가가 모두 끝났다.

유독히도 행사가 많아 멀리 가지도 못하고

날짜만 가고 말았다. 정말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