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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얘기

경주 남산(용장주차장~고위봉~금오봉~서남산주차장)



▣ 산행일자 : 2018. 3. 27(화) - 제 803회차 산행

▣ 날      씨 : 맑음 - 미세먼지 나쁨

▣ 산행장소 : 경주 남산 고위봉(494m), 금오봉(468m)

▣ 산행일자 : 2018. 03. 27(화)

▣ 산행인원 : 목포다솜산악회와 함께

▣ 산행코스 : 용장주차장~용장골 출렁다리~고위봉~백운재~신선암~칠불암~삼화령~용장골~용장사지~이영재~금오봉~상사바위~상선암~삼릉~서남산주차장

▣ 산행거리 : 11.19km(gps 측정치 - 산길샘)

▣ 산행시간 : 4시간 54분(휴식시간 및 점심시간 52분 포함)

산행일지

05:30 무안 남악 전남개발공사 앞에서 출발(산악회 버스)

09:40 용장주차장 도착 산행시작

09:52 용장골 출렁다리

11:03 고위봉

11:12~11:40 고위봉에서 점심식사

11:52 백운재

12:05 신선암

12:15 칠불암

13:08 삼화령

13:14 용장골

13:24 용장사지

13:41 비파골

13:45 금오봉

13:54 상사바위

13:56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13:59 바둑바위

14:06 상선암

14:22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

14:30 삼릉

14:34 서남산주차장 도착 산행종료 


▣ 산행후기

오늘도 미세먼지가 장난이 아니다. 그렇지만 산행이 예약되어 있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 경주로 향했다. 신라 천년의 역사를 지켜온 경주는 시 전체가 역사박물관이다. 그 중 신라인들이 천년을 두고 다듬었던 남산은 그 자체가 신라인들에게 절이요, 신앙으로 자리한다. 한 구비를 돌면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마애불이 맞이하고 골골이 남아 있는 수많은 절터와 유적은 아름다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기에 남산은 문화재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산 자체가 문화재인 것이다. 우거진 송림사이로 뻗어 있는 오솔길을 따라 걷노라면 곳곳에 신라의 유적과 유물을 만날 수 있다. 경주사람들은 흔히 ‘남산을 오르지 않고 경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고들 한다. 경주 남산은 평소에는 가기 힘든 곳. 휴가철을 맞아 산행과 함께 우리의 문화유산을 볼 수 있는 1석2조의 피서지다.

 

금오산(4백68m)과 고위산(4백94m)의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0여개의 계곡길과 산줄기로 이루어진 남산에는 1백여 곳의 절터와 60여구의 석불과 40여기의 탑이 있다. 이와 함께 남산의 지정문화재로는 보물 13개, 사적 12곳, 지방유형문화재 9개와 중요 민속자료 1개로 곳곳에 유적이 산재해 있다. 경주 신라문화원이 제작한 경주 남산지도에는 순례길만 70여개를 잡아놓았을 정도니 비록 산은 낮지만 발길 닿는 곳마다 등산로다.

 

하루 일정으로 남산을 둘러보는 코스가 많이 있지만 오늘은 고위봉-금오봉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다녀왔다. 산행을 마치고는 첨성대를 둘러 보았으며, 쌈밥으로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남산을 오르지 않고 경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기에 목포에서 경주까지 거리가 멀어 가고 오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피곤함도 모르고 다녀올 수 있었다. 참으로 위대한 여정이었다.


▣ 산행지도 및 GPS 트랙






▣ 산행사진


▲ 용장주차장




▲ 단체사진




▲ 도로를 따라 산행시작


▲ 용장사쪽으로 진입



▲ 마을안길을 따라 진행





▲ 용장골 출렁다리


▲ 임도를 따라 오르고...


▲ 좌측으로 진입






▲ 천우사 0.5km지점













▲ 고위봉 0.7km지점






▲ 밧줄을 잡고 오르는 구간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음














▲ 멋있는 소나무 군락지






▲ 계단이 많이 설치되어 있음










▲ 멋있는 바위들도 많고...




▲ 헬기장


▲ 고위봉











▲ 고위봉에서 점심식사





▲ 고위봉에서 찍은 단체사진



▲ 백운재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높이 1.9m. 보물 제199호. 절벽의 바위 면을 얕게 파고, 고부조(高浮彫 : 모양이나 형상을 나타낸 살이 매우 두껍게 드러나게 한 부조)로 새긴 마애불로서 머리에는 높은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썼으며, 그 위로 발계(髮?)가 솟아 있다.


얼굴은 이목구비가 정제되어 균형을 이루고 있으나, 두 볼이 처져 비만한 모습은 근엄한 표정과 함께 남성적인 기풍이 역연하다. 머리카락은 어깨 위에까지 늘어져 둥글게 뭉쳐 있다. 신체는 어깨가 넓고 무릎 폭이 넓어 안정된 모습을 보여 주는데, 천의(天衣)는 약간 비만한 몸의 굴곡을 뚜렷이 드러내면서 무릎 밑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두 손은 가슴 앞에 들어 오른손에는 꽃가지를 쥐고 왼손은 엄지와 장지를 맞대었으며, 오른발은 대좌 아래로 내려 연꽃 족좌(足座)를 밟고 왼다리를 무릎 위로 올려 유희좌(遊戱坐)에 가까운 반가좌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의 보살상은 시대가 지나면 보타락가산(普陀洛迦山)에 상주하는 관음보살로 표현되는 것이 원칙이다.


대좌는 옷자락이 대좌를 덮고 있는 상현좌(裳懸座)로서 옷주름은 고식의 기하학적인 의문(衣文)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늘어져 있다. 발밑에는 동적인 화려한 구름을 새겨 상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으면서 이 보살상이 천상(天上)에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광배는 바위 면을 주형(舟形)으로 얕게 파내어 거신광(擧身光)으로 삼고, 그 내부는 세 줄의 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였다.


광배의 윗면은 일단의 턱이 지면서 가로로 길게 팬 자국이 있어 본래는 목조 전실이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신체의 양감(量感)이 강조된 조각 기법과 섬세한 세부 표현, 장식성의 경향이 엿보이는 점 등에서 이 마애보살상은 전성기 통일신라 조각 양식에서 조금 벗어난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칠불암 마애불상군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남산 봉화골에 있는 절로 삼존불 높이 4.26m, 사면불 높이 2.2∼2.4m, 국보 제312호, 칠불암. 바위 면에 부조한 삼존불상과 사각의 돌기둥 각 면에 부조한 4구의 불상 등 모두 7구의 불상이 있다. 8세기 중엽에 조성되었다.


창건연대 및 중창의 기록은 전하지 않고 있으나 현존하는 유물들로 보아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남산 내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불상을 갖춘 곳이다.


칠불암이라 부르게 된 것도 마당에 있는 바위에 아미타삼존불()을 비롯하여 사방불()이 조각되어 있기 때문으로서, 1930년대에 지금의 암자가 세워졌다. 이 칠불은 조각수법이 빼어날 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방불의 연구에 귀중한 유물이 된다. 또, 이 절의 위쪽 신선바위[]에는 반가상()을 한 보살상이 있는데 매우 빼어난 작품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인법당()을 비롯하여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는데, 산신각에는 특이한 모자를 쓴 산신탱화가 있었으나 분실되었다. 또한, 이 암자에는 칠불 외에도 폐탑의 탑재를 모아 올린 3층 석탑 1기와 옥개석으로 보이는 6개의 석재, 여덟 겹의 연꽃이 새겨진 배례석()이 있다.


이 밖에도 많은 석재유물과 기와조각들이 있는데, 이들은 거의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로 추정된다. 또한, 이 암자는 신라의 고승 원효()가 머물면서 대안()의 가르침을 받았던 도량으로 전하고 있다. 마애불상군은 국보 제312호로 지정되어 있다.







▲ 칠불암에서 인증샷













▲ 삼화령


삼화령은 '삼화수리'라고도 하는데 수리는 높은 곳을 의미하며 남산에는 세곳 수리가 있는데 금오봉과 고위봉, 그리고 두 봉우리의 삼각형 위치에 해당하는 이 곳 봉우리를 합하여 삼화령이라 불렀다.


삼화령()은 신라 시대의 화랑()이 기예를 닦던 장소이자, 미륵 사상이 융성했던 곳이다. 선덕여왕시절 생의스님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 '나를 따라오라'하며 남산 남쪽 골짜기에 데리고 가서 풀을 묶어 놓으며 "내가 이곳에 묻혀 있으니 나를 파내어 고개위에 안치 해 주시오"라고 했다.


다음날 그곳에 가 보았더니 꿈속처럼 풀을 묶어 놓은 곳이 있었다. 생의스님은 땅을 파 미륵불을 발견하고 삼화령 꼭대기에 모셔놓고 그 자리에 절을 지어 공양하였다. 또한, 이 곳이 미륵의 성지였음을 밝혀주는 설화가 『삼국유사』에 전한다.

 
3월 3일에 경덕왕이 신하들과 함께 귀정문의 누각에 나가서 이르기를, 뜻과 예절을 갖춘 승려를 데려 오라고 하였다. 이 때 검소한 옷을 입은 승려 한 사람이 남쪽에서 오고 있었는데, 왕은 그를 보고 기뻐하며 누각 위로 불러 영접하였다. 승려가 들고 있는 삼태기 속에는 다구만이 가득하였다.


왕이 그 이유를 물으니 “소승은 3월 3일과 9월 9일에 차를 달여서 남산 삼화령의 미륵 세존께 드리는데 오늘도 차를 드리고 오는 길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로써 삼화령이 미륵불과 인연이 있는 곳임이 밝혀졌으며, 경주 남산성 부근에서 삼화령과 관련된 석불 3존이 발견되어 현재 국립 경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미륵 세존이 있었다는 삼화령의 위치와 석불 3존에 대한 존명 등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이를 추측하는 다른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 용장골



▲ 용장사곡 삼층석탑


남산 용장사곡삼층석탑은 하층기단을 생략하고 암석에 높이 6m의 괴임 1단을 직접 마련하여 삼층기단 중석을 받게 하였다. 중석의 1면은 한 개의 돌로 되어 있고, 다른 3면은 2개의 돌로 되어있으며, 각면에서는 모서리기둥과 안기둥 한 개씩을 모각하였다.


갑석은 2단 판석으로 되어 있으며, 그 밑에는 부록이 있다. 갑석의 상면은 약간 경사져 있고, 그 상면 중앙에는 모가 난 2단의 탑신 받침이 마련되었다. 탑신부의 각층 탑신과 옥개석은 각각 한 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초층탑신()은 상당히 높은 편으로 네 귀에 모서리기둥이 있을 뿐이고, 2층 탑신은 급격히 줄어 들었다.


  옥개석은 받침이 각층 4단이고 추녀는 직선이나 전각 상면에는 경쾌한 반전을 보인다. 옥개석은 상면에는 1단의 괴임이 있어 각각 탑신석을 받게 된 점은 일반 석탑에서와 다름없다. 상륜부는 전부 없어져 그 원래의 상태를 알수 없고 다만 3층 옥개석 꼭대기 끝 부분에 찰주공()만이 남아 있다. 각 부의 조화가 아름답고 경쾌하며 주위의 자연과 잘 어울리어 장관을 이루는 수법 양식에서 신라하대에 속하는 대표적인 석탑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 연혁(유래)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곳으로 잘 알려 있으며, 현재 몇 군데의 석축()이 남아있어 절터였음을 짐작하게 해줄 뿐이다. 용장사 법당터보다 높은 곳에 세워진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자연 암반을 다듬어 아랫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면마다 기둥새김 셋이 있는 윗기단을 설치하여 산 전체를 기단으로 여기도록 고안되었다.


 층마다 몸체돌 하나에 지붕돌 하나씩 3층으로 쌓았는데, 지붕돌과 몸돌을 별도의 석재로 조성하였다. 1층 몸돌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2층부터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층급 받침이 4단이고 처마는 직선을 이루다가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윗부분이 없어진 탑의 높이는 4.5m 밖에 되지 않지만, 하늘에 맞닿은 듯이 높게 보여 자연과의 조화미가 돋보인다. 바위 위에 세운 석탑으로서 통일신라 하대의 대표적인 우수작으로 꼽힌다. 










▲금오봉




▲상사바위로 위쪽에서 낙석이 우려되어 통제하고 있음




▲산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마애석가여래좌상(慶州 南山 三陵溪 磨崖石迦如來坐像)은 경주 남산의 삼릉계곡에 있는, 마애 석가여래상이다. 1982년 2월 24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158호로 지정되었다. 이 마애불상은 석가여래를 새겼으며, 6미터에 이른다.


▲바둑바위에서 바라본 풍경



▲바둑바위에서 인증샷



▲진달래꽃이 만발



▲상선암


상선암은 남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암자이다. 삼릉골 석불좌상 뒤쪽으로 약 1㎞ 정도 걸어올라 상선암에 이르면 남산 불상 중 가장 크고 조각이 우수한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을 볼 수 있다. 높이 5.2m, 무릎 폭 3.5m 정도 되며, 연화대좌의 폭은 약 4.2m이다.


▲상선암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


머리 부분은 돋을새김을 하였으며 몸 아래쪽으로 갈수록 선각에 가까운 조각으로 단순화시켰다. 오른손은 앞으로 펴고 왼손은 무릎 위에 얹었다. 통견의 옷무늬는 부드럽게 나부끼며 좌대에는 연화를 음각하였다.

귀 뒷부분에는 진달래 한줄기가 있어 봄마다 분홍빛 진달래를 피우는데, 삼릉골 최고높이에서 고요히 인간세계를 굽어살피는 불상의 위엄을 한결 부드럽게 녹여낸다. 동쪽으로는 남산의 주봉을 대하고 서쪽으로는 배리의 평야를 내다보고 있다.

거대함에서 뿜어나오는 위엄뿐만 아니라 자비에 넘치는 얼굴 모습은 믿음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며, 신령스러운 이 암벽 아래에는 기도하기에 알맞은 터가 자연적으로 마련되어 있어 소원성취를 기도하는 부인들의 발걸음이 잦다.

사각에 가까운 머리는 풍만하며 가늘고 긴 눈은 정면을 보고 있다. 예리하게 다듬어진 코는 굳세며 굵은 눈썹은 단정하게 초생달을 그리고 있다. 입술은 굳게 다물고 있지만 살진 두 뺨과 입 언저리에는 조용한 미소가 깃들여 있다. 소발한 머리에 육계는 자그마하고 큰 귀가 어깨까지 닿아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8호이다.


▲상선암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 얼굴












▲삼릉숲길은 소나무가 아주 멋졌다.


▲삼릉

▲서남산주차장에 도착 산행 종료

▲서남산주차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버스



세월은 유수와 같고 인생은 허무한 것이라고 하더니
금년을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도 마지막 주네요.
오늘은 나이별 인생에 대하여 살펴볼까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 나이는 어떻게 되시나요?
저도 어느덧 6학년 중반을 향하여 열심히 뛰고 있답니다.ㅎㅎ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죠.
그러니 나이와는 상관없이 젊은이와 같은 열정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나이별 인생의 모습에 대하여 같이 나누면서
우리의 인생을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열 살 때는
어디 간다면,
무조건 좋아라 따라나섰던 나이…
인생은 신기했습니다.

스무 살 때는
친구들과 함께라면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그냥 좋았던 나이....
인생은 무지개였습니다.

서른 살 때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행선지를 묻지 않았던 나이…
인생은 데이트였습니다.

마흔 살 때는
어디 한번 가려면 애들 챙겨야 하고,
이것, 저것 준비로 걸리적거리는 게 많지만
꼭 한번 가보고 말겠다고 다짐했던 나이…
인생은 해외여행을 꿈꾸는 것 같었습니다.


쉰 살 때는
종착역이 얼마나 남았나,
기차표도 챙기고, 놓고 내리는 물건 없나?
이것, 저것 살피는 나이…
인생은 기차여행 같았습니다.


예순 살 때는
어딜 가도 유서 깊은 역사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나이…,

인생은 고적답사 여행 같었습니다.

일흔 살 때는
나이, 학벌, 재력, 외모 등
아무것도 상관없이 어릴 때의 동무를 만나면
무조건 반가운 나이…,
인생은 수학여행입니다.


여든 살 때는
누굴 찾아 나서기보다는
언제쯤 누가 찾아올까? 기다려지는 나이…
인생은 추억여행입니다.


아흔 살 때는
지금 누굴 기다리십니까?
아니면 어딜 가시려 합니까?

아무도 오지 않고 갈 데도 없는 나이…
인생은 시간여행입니다.

인생이란?
왕복이 없는 승차권 한 장만
손에 쥐고 떠나는 단, 한 번뿐인
여행이었습니다.

인생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인생은 '다시'라는 말이 없습니다.

인생을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는

후회가 없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지금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인생은 대신 살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위해
3월의 남은 시간을 잘 보내시고
재미있는 인생 여행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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