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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여행&맛집

영암 주지봉(성기동국민관광지~죽순봉~주지봉~문필봉~성기동국민관광지)

▣ 산행일시 : 2015. 07. 25(토)

▣ 기상상황 : 오전에는 흐렸으나 오후에는 맑음

▣ 산행장소 : 죽순봉(403.0m), 주지봉(490.7m), 문필봉(450m)

▣ 행정구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산행인원 : 산친구들 따라서

▣ 산행코스 : 성기동국민관광지~전망대~지침바위~문산재, 양산재~왕인석상~책굴~월대암~죽순봉~주지봉~문필봉~주지골~왕인박사유적지~성기동국민관광지(원점회귀)

▣ 산행거리 : 7.9km(Gps 측정)

▣ 산행시간 : 4시간 58분(휴식시간 1시간 12분 포함)

▣ 이동수단 : 자가용 2대
▣ 산행후기

나는 등산을 즐겨 한다. 집 가까이에 있는 근교 산행은 물론 주말이 되면 전국의 명산이라고 알려진 곳들이나 계절마다 아름답다고 이름난 산들을 찾아다니는 게 가장 큰 취미라고 할 수 있다. 9정맥 중 금남호남정맥, 금남정맥, 금북정맥, 한남금북정맥, 한남정맥, 낙동정맥 등을 종주하였으며 호남정맥과 한북정맥 일부를 다녀 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낙남정맥을 하고있다. 낙남정맥이 끝나고 조금 한가한 시기가 오면 또 계절에 상관없이 백두산에서부터 한반도 끝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등산하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려 한다.

많은 이들이 내게 정력적으로 등산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만큼 산이 좋다. 산에는 계절마다 다른 얼굴이 있고 그 다른 얼굴은 항상 내게 경이로 다가온다. 어떤 이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서 우리나라를 벗어나 멀리 떠나는 해외여행만을 고집하기도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산에 갈 때마다 그 이상의 놀라움을 느낀다. 

산을 올라가는 길에 잠깐 돌에 걸터앉아 쉬면서 올라온 아름다운 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만한 낙원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지천명이 되어서 시작한 등산은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됐다.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서 산에 오르기 시작했지만 산은 건강 이외에도 많은 것을 내게 주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홀로 산에 올라가는 것만 한 것이 없었고, 사람과 친해지는 방법 중에 함께 산행을 하는 것만 한 것이 없었으며, 산의 맑은 공기는 머리를 맑게 해줘 많은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해줬다. 

 

요즈음도 생각할 거리가 생기면 짐을 챙겨 집 근처 산에 올라가곤 한다. 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나면 일상생활 속에서는 실마리가 풀리지 않던 것들도 신기하게 술술 풀리는 경우가 많다.  


산을 다니면서 나는 건강을 얻었고, 사람을 얻었고, 즐거움 그리고 지혜를 얻었다. 이것들 중 하나만 얻을 수 있다고 해도 좋은 것인데 산에 오를 때마다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어찌 내가 산에 가지 않을 수 있을까. 정말 산은 신이 내게 내린 축복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서 비교적 근거리에 있는 월출산 자락의 죽순봉, 주지봉, 문필봉에 대한 공부를 한 후 등산화 끈을 매고 설레는 마음으로 위대한 여정에 올랐다. 12호 태풍 할롤라의 영향인지 오전에는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것 같더니 오후가 되자 뭉게구름이 하늘에 둥실둥실 떠 다녔다. 오늘 산행은 한마디로 여유로움과 추억 그리고 낭만을 맛본 힐링산행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 산행지도

 

 

 

 

▣ 산행사진

 

 

 

 

 

 

지침바위

 

 

 

문산재

 

양산재

 

왕인석상

 

 

 

책굴

 

 

 

 

 

 

 

 

 

 

 

 

 

 

 

 

 

 

 

 

 

 

 

 

 

 

 

 

 

 

 

 

 

 

 

죽순봉(403.0m)

바위의 모양이 죽순처럼 솓아 올라있다고해서 죽순봉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수석전시장을 방불케할 정도로 멋진 기암괴석들이다. 군데군데 밧줄도 있고 암릉이라 주의를 요한다.

 

 

 

 

 

 

 

 

 

 

 

 

 

 

 

 

 

 

 

 

 

 

 

 

 

 

 

 

 

주지봉(490.7m)

주지봉은 월출산(813m)의 서쪽에 위치한 나즈막한 산이다. 도갑저수지의 서쪽에 있는 능선인데 죽순봉 아래 성기동 일대에 왕인박사 유허비를 비롯한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월출산은 최고봉인 천황봉을 비롯하여 구정봉, 장군봉, 자봉, 향로봉, 주지봉, 노적봉등의 영봉이 기암 괴석으로 신비롭게 이루어져 예로부터 호남의 소금강이라 일컬어져 왔고, 미왕재를 위시한 능선은 억새풀밭으로 장관을 이루며 산능의 북쪽면은 날카롭고 가파른 돌산인 반면 남쪽면은 완만한 육산으로 이루어져 있고 골짜기가 깊지 않아 곳곳에 저수지가 설치되어 있다.

 

월출산에는 도갑사의 해탈문, 무위사의 극락보전 마애여래좌상 등 국보와 문화재 및 명소가 많고 주지봉 북쪽 기슭 성기동은 백제 근구수왕 때의 학자로 일본에 문화를 전수시킨 왕인 선생과 신라의 명승 도선국사의 출생지로 유적과 전설등이 많다.

 

 

 

 

 

 

 

문필봉(450.0m)

해발 450m이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에 속한다. 해발 491m의 주지봉()과 쌍봉()의 형세를 갖추고 있어 두 봉우리를 주지봉이라 통칭하기도 하는데, 월출산 주능선에서는 주지봉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봉우리 기슭에 문산재()·양사재()·책굴 등  일본에 학문을 전한 백제 왕인() 박사의 유적지(전라남도 기념물 20호)가 있다.

 

 

 

 

 

산행을 마치고 주차장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려고 하였는데

냄새도 나고 주변 여건이 별로 좋지 않아

구림마을 상대포 정자로 가서 먹기로 하고 이동을 하였다.

 

구림마을

 

월출산 서쪽에 위치한다. 뒤쪽에는 마을의 주산() 역할을 하는 주지봉이 있고, 마을 앞으로는 인근 지방도까지 약 28km 길이에 달하는 벚꽃길이 조성되어 있다. 마을의 북쪽은 북송정, 동쪽은 동계, 남쪽 산 아래 지역은 고산 혹은 남송, 서쪽은 서호정이라 칭해진다. 오늘날 낭주 최씨, 함양 박씨, 연주 현씨, 해주 최씨, 창녕 조씨, 선산 임씨 등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구림마을은 신라말기 승려인 도선국사()의 탄생 설화와 관련이 있다. 신라 말 어느 겨울 성기동 구시바위에서 최씨 성을 가진 처녀가 빨래를 하던 중 냇물에 떠내려 온 푸른 오이를 먹고 아이를 가졌다고 한다. 처녀의 집안에서 이것을 부끄럽게 여겨 그 아이는 숲속 바위에 버려졌는데, 며칠이 지난 후에 그곳에 가보니 비둘기들이 아기를 감싸며 돌보고 있었다. 이를 보고 다시 아이를 데려와 키웠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그 아이가 훗날 풍수사상으로 유명한 도선국사이다. 이후 바위는 국사암, 숲은 비둘기 구(), 수풀 림()을 써서 구림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 배출된 대표적인 인물로는 백제시대 유명한 학자로 당시 일본에 한문과 백제문화를 전한 왕인() 박사가 있다. 마을 입구에는 그 당시 일본으로 가는 출발지였던 상대포가 남아있다. 삼국시대 이곳은 국제무역항으로 일본이나 중국으로 가는 배가 이곳에서 출발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간척사업으로 인해 작은 규모의 저수지로 변하였다.

 

약 1,200년 전 통일신사시대에는 한반도 최초로 유약을 칠한 도기가 이곳에서 생산되었다. 이 밖에도 마을에는 역사 속 다양한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조선시대 서예가로 이름난 한석봉은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이 마을에서 어머니와 글쓰기, 떡 썰기 시합을 했다고 전해진다. ‘산버들 가려 꺽어 보내노라 님에게’라는 시조로 유명한 기생 홍랑이 사랑에 빠졌던 조선시대의 문장가 최경창도 이 곳 출신이다.

대표적인 건축물은 17세기 중엽에 지어진 회사정()이다. 마을의 대동계 장소로 사용된 곳으로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85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마을에 귀한 손님이 방문하였을 때나 행사가 있을 때 자주 이용되었으며, 일제 강점기 때에는 독립운동의 집화장소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벽이나 방, 난간이 없이 기둥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340년 전에 세워진 낭주 최씨 가문의 안용당() 건물도 유명하다.

마을에는 1565년 조선 명종 때 창설되어 약 45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구림대동계'가 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힘을 합치는 상부상조()를 주목적으로 하면서도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여 마을 질서를 잡아왔다고 한다. 계 활동을 기록한 영암구림대동계문서(,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98호)가 남아있다.

2006년 한옥보전시범마을로 선정되면서 고려와 조선시대의 특징이 나타나는 10여 채의 전통가옥이 신축되었다. 마을 내에는 한옥 민박시설이 대규모로 조성되어있으며 전통혼례, 짚풀공예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해마다 벚꽃이 피는 시기에는 왕인문화축제가 열려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주변 관광지로는 월출산국립공원, 왕인박사유적지, 도갑사, 도기박물관, 하() 미술관 등이 있다.

 

상대정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었던 포구 상대포

 

상대포 전경

 

상대포는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상대 마을 서쪽에 있었다. 현재 인근에 영암 도기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상대포에는 누각과 작은 연못이 복원되어 있다. 상대포는 인근 들판의 해발 고도가 2m 내외로, 밀물이 되면 깊이 2m 정도의 바다가 되어 배가 드나들 수 있는 가항 수로의 끝단에 해당된다.

설화에 의하면 상대포에서 왕인이 일본으로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전거가 분명하지 않다. 분명한 상대포 운영 시기는 상대포 인근에 있는 구림 도기 가마 터, 정원명 석비, 도선 관련 기록이나 설화 등으로 보아 통일 신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대포는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상대 마을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상대포라는 지명은 기록에서는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통일 신라의 국제 포구였던 상대포는 고려나 조선에 들어와서는 포구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통일 신라 당시 상대포는 인근 남동쪽 구릉에 구림 도기 가마터가 있어 산업 단지의 포구라 할 수 있다.

1987년 12월, 2기의 가마터가 이화 여자 대학교에 의하여 발굴되었다. 발굴 결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도기에 유약을 발라 만든 시유 도기를 만든 가마터로 밝혀졌다. 구림에서 생산된 도기들이 장보고 유적인 완도 청해진 장도 유적에서 발굴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점이다. 이를 감안하면 구림 도기 가마는 통일 신라 시대인 7~9세기 무렵에 운영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한편 통일 신라 때 상대포 인근에서는 관 주도였던 월출산 제사와는 별도로 민간에서도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도 있었다. 구림 마을에서는 매향 신앙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정원 2년명()[786년] 석비가 그것이다. 이 석비는 지금까지 발견된 매향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구림 도기 가마 터의 운영 시기와 겹치고 있고 상대포와 관련된다.

 

매향 신앙은 향나무를 보통 육수()와 해수()가 만나는 갯벌에 매장하여 불력()의 보호를 이끌어내는 민간의 미륵 하생 신앙으로, 해양 문화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매향 사실을 기념하고 매향한 지점을 잊지 않기 위해서 바위 또는 비에 새기는데 이를 매향 바위 또는 매향비라 하며, 영암 정원 명 석비 역시 매향비에 해당한다.

또 상대포의 운영 시기는 구림 마을 출신 인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먼저 구림 출신 도선[827~898]은 신라의 멸망과 왕건의 탄생을 예언하고, 17세의 왕건에게 찾아가 덕과 지략을 가르쳐, 한국식 비보 풍수설의 개창조로 일컬어지고 있다. 역시 구림 출신인 최지몽()[907~987]은 924년 왕건의 서남해안 활동 시 핵심 참모로 왕건을 따라 종군()한 후 중앙 요직에 진출한 인물이다.

이런 상대포와 관련된 역사와 아울러 고대 상대포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기록을 살펴보자. 고려 명종 때의 시인 김극기()는 영암의 월출산에 올라 영암 서쪽 서호(西) 바다를 “해상() 백 명이 옛날에 바다를 넘어갈 때, 산 위의 신광()을 아득히 바라보았다.”라고 표현하였다.

 

여기에서 ‘해상 백 명’은 다음 조선 후기에 이중환()이 쓴 『택리지()』의 다음 기록과 일맥상통한다. “월출산 남쪽은 월남촌이고 서쪽은 구림촌이다. [구림촌은] 신라 때 이름난 마을로서 지역이 서해와 남해가 맞닿는 곳에 위치하여, 신라에서 당나라로 조공 갈 때 모두 이 고을 바닷가에서 배로 떠났다.

 

바닷길을 하루 가면 흑산도에 이르고, 흑산도에서 또 하루 가면 홍의도()[홍도]에 이른다. 다시 하루를 가면 가가도()에 이르며, 간방() 바람[동북풍]을 만나면 3일이면 중국 태주() 영파부() 정해현()에 도착하게 되는데, 실제로 순풍을 만나기만 하면 하루 만에 도착할 수도 있다.

 

또 남송이 고려와 통행할 때 정해현 바닷가에서 배를 출발시켜 7일 만에 고려 경계에 이르고 뭍에 올랐다는 곳이 바로 이 지역[구림촌]이다. 당나라 때 신라 사람이 바다를 건너서 당나라에 들어간 것이 지금 통진() 건널목에 배가 잇닿아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 당시에 최치원, 김가기, 최승우는 상선을 편승하고 당나라에 들어가 당나라의 과거에 합격하였다.”

이상의 기록으로 보아 구림 마을은 신라 때부터 명촌이었고, 중국에 왕래하는 포구였음을 알 수 있는데, 상대포가 그 포구였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신라 말 최치원, 김가기, 최승우 등이 당나라에 유학할 때 상선에 편승하여 떠났다는 것으로 보아, 상대포는 사신선과 상선이 발착()하는 통일 신라의 중심 포구였음을 알 수 있다.

상대포는 일제 말기 들어 영암군 학산면 출신 사업가 현준호()[1889~1950]가 1939~1949년까지 간척 공사를 하여 학파 농장을 만들면서 바다 물길이 차단되어 포구 기능이 완전히 상실되었다.

 

 

 

 

 

 

상대포구가 있는 상대정에서 삽겹살을 구워 먹으며 점심식사를 하였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좋았으며 시간만 충분하다면 낮잠을 한숨 자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상대포구에서 놀고 있는 잉어에게 밥을 주었다.

뿔뿔히 흩어져 있던 잉어들이 밥을 주워 먹느라 정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