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에 가는 날이면 가슴이 설레인다.
국립공원 제1호이자
민족의 영산인 지리에 들 생각을 하니
어찌 가슴이 설레지 않겠는가?
그러나 막상 지리산에 가면
수많은 고난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주능선에 올라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없기때문이다.
오늘은 거림(길상암)~도장골~와룡폭포~청학굴
~청학연못~거림코스를 다녀왔다.
산행거리는 약 14km정도이며,
소요시간은 9시간 27분이 소요되었다.
주능선에 올라
황금능선, 시루봉, 촛대봉을 바라보고
청학연못을 구경하고 왔다.
앞으로 영원히 다시 가지 못할 곳을
다녀 왔기에 가슴이 뿌듯하다.

▣ 산행일시 : 2014. 02. 02(일)
▣ 날 씨 : 맑음
▣ 산행장소 : 도장골~청학연못
▣ 산행인원 : 9명
▣ 산행코스 : 길상암~도장골~와룡폭포~촛대봉좌골~청덕굴~청학연못~거림골
▣ 산행시간 : 9시간 30분







설렁탕으로 아침식사

거림마을





길상선사


길상암


거림마을에서 오른편으로 인적 드문 길을 접어들면 도장골이 나온다. 촛대봉과 멀리 연하봉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물 줄기가 크고 작은 골을 이뤄 한데 모여 거림마을까지 이어지는 계곡이다.
지리산 억겁의 신비가 담겨있는 듯한 골짜기로 알려져 있다. 아기자기 하면서도 웅장함의 계곡미를 자랑하는 골이기도 하다.
도장골은 그러나 아직도 일반의 발길을 좀처럼 용납치 않고 비경을 간직한 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물론 지리산 대다수 계곡이 그러하듯 이곳 도장골 역시 등산 인구가 급증하면서 차츰차츰 사람들의 발길에 멍들어 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여름철 피서 인파들은 이미 도장골 입구인 밀금폭포까지 진입, 천하 제일의 피서지임을 찬탄하며 이곳을 찾은 현명함을 자랑삼아 늘어놓고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으니 멀지 않아 다른 모습으로 둔갑할 것은 명백한 현실이다.
도장골은 거림마을 주민들이 식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놓고 있어 마을 주민들은 등산객들이 이 골을 오르는 광경을 매우 싫어하고 있다.
주민들은 지리산 수많은 골짜기 가운데 이 골만큼은 자연 그대로 남아 있기를 원하며 갖가지 경고성 문구를 등산로 어귀에 내걸어놓고 있는데 이러한 일련의 조치 덕분에 그동안 잘 보전돼 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갈수록 줄을 잇는 등산객들의 무차별적인 입산은 마을 주민들의 소극적인 보존책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으니 도장골의 운명도 여느 계곡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마을 주민들이 자신들의 식수원인 도장골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소극적으로 일관할 경우 도장골도 이제 더 이상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 남기 힘든 지경에 와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을 주민들이 등산로를 개방해 놓고도 말로만 출입통제를 외칠 뿐 특별한 제한을 하지 못 하고 있는데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역시 분명한 입장 정리를 해주지 않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실제 도장골을 가려면 거림마을에서 왼쪽 거림계곡으로 가는 것 못지 않게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것은 물론 가는 길도 잘 만들어져 있어 한 번 가 본 사람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며 다른 동료들까지 동행해오고 있다.
도장골의 묘미가 다른 어느 골짜기보다 더 압도적임을 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는 길은 누구든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와룡폭포까지는 별다른 어려움없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좋은 편이다.
거림마을에서 조금 가면 거림계곡가는 삼거리를 지나 아담한 양옥처럼 단장된「길상암」이란 암자가 있는데 암자 바로 앞으로 잘 다듬어진 등산로를 따라가면 된다.
가는 길에 길상암을 한번쯤 들러보는 것도 색다른 맛이 있다. 7년여 전에 세워진 개인 사찰로 전혀 절같은 분위기가 풍기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암자의 주지스님은 여느 사찰과는 다르게 신도를 회원제로 모집, 일정한 수의 신도만 확보해 매월 정해진 일정에 따라 신도들을 위한 기도회를 가지면서 피서철은 물론 언제든 암자를 신도들에게 개방해 암자를 휴양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등 경영기법을 발휘하고 있다.
도장골의 절경을 회원 신도들에게 안내해주는 것은 물론 숙식 및 각종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식의 사찰 운영을 해 암자가 흡사 휴양 콘도미니엄과 같은 구실을 하는 듯했다. 현대 사회의 새로운 첨단 사찰 경영기법이 깊은 지리산 중 조그만 암자에 도입된 사실이 흥미롭다.
길상암을 지나면 바로 터널같은 깊은 숲속길 나오며 신비경이 파노라마처럼 계속된다. 계곡 초입부터 거대한 수량의 밀금폭포가 버티고 있으며 용소, 윗용소를 보면 반들반들한 반석들이 푸른 녹음과 어우러져 청량감을 맛볼 수 있다.
두어 시간 가량 오르면 깊은 계곡에 어울리지 않게 거대한 높이의 폭포수를 맞이할 수 있다. 이 폭포는 와룡폭포라 한다. 대다수 등반객들이 주로 거림마을에서 와룡폭포 구간까지 산책 정도로 등반하고 하산하고 있다. 이곳부터 다소 험난한 등산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와룡폭포에서는 촛대봉으로 올라 세석펑전까지 갈 수 있으며 멀리 연하봉까지 오를 수 있으나 연하봉으로 가는 길은 거의 찾는 이가 없다. 전문 등반가들이 가끔 연하봉으로 가는 길을 찾아나서지만 쉽지는 않다. 촛대봉으로 가는 길은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쯤 시도할 만한 등산 코스다.
깊은 계곡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면 갑자기 광활한 대평원을 만날 수 있는데다 촛대봉 못 미쳐 시루봉에서부터 시작되는 암릉은 지리산이 아닌 듯한 느낌을 준다. 마치 설악산의 용아장능을 걷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으며 멀리 오뚝 솟은 천왕봉의 위용은 이색적이다.
도장골 코스를 거쳐 촛대봉으로 가는 등반로가 다소 무리한 것으로 판단되면 거림계곡을 뒤따라 세석에 올라 촛대봉 - 도장골 코스로 하산하는 방법을 택해도 좋다.
도장골은 아직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며 원시림이 자연상태로 잘 보존돼 있고 지형도 험난해 근 대사의 지리산 최대 비극인 빨치산의 주무대로 활용되기에 충분했음을 알 수 있다.
들어가면 갈수록 더욱 깊고 넓어지는 지형 탓과 양지 바른 특성은 빨치산의 주요 근거지로서 최적 지였던 것이다. 당시 지리산에 몰려 들었던 빨치산은 거림골과 도장골, 그리고 빗점골 등지를 넘나들던 빨치산은 이곳 도장골을 최대 식량 저장지와 환자수용소로 활용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와룡폭포 상단부는 지휘부와 환자수용소로 활용될 정도의 주요 은신처였음이 이태의「남부군」, 정충제의 「실록 정순덕」등의 기록에서 확인되고 있다.
당시 국군토벌대와 빨치산과의 끊임없는 교전은 「피습과 은신」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워낙 산세가 깊고 험난해 토벌대는 빨치산의 주요 지휘소와 식량기지를 한두 차례밖에 피습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다.
지금은 도장골이나 거림골이 곡점에서 거림마을까지 닦여진 도로를 따라 차편을 이용하면 금방 갈 수 있으나 당시는 곡점에서부터 시작되는 골짜기를 한번 가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 점을 최대한 이용한 빨치산의 활동이 도장골에서 최고조에 달할 수 있었던 것은 자명한 이치다.
도장골이 피습당하면 세석 등지로 옮겨 지리산 어느 골이든 쉽게 은신처로 이동할 수 있었던 지형적 요충지로 한몫했던 것이다. 그러나 도장골도 궁극적으로는 안전지대로 남지 못 했음은 물론이다.
당연한 귀결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역사의 순리를 벗어난 역리는 결코 종말을 맞을 수 밖에 없다는 엄연한 진리를 말해주는 것이다. 어두운 과거사의 흔적은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고 있으나 도장골을 오르면서 새삼 되새겨진다.
당시 토벌대의 일원으로 참가했던 진주지역의 60-70대 산꾼들이 종종 주말을 이용해 도장골을 등반하고있는 것은 많은 것을 후배들에게 시사해 주고 있다.
오고 가며 만나는 젊은이들에게 간혹 들려주는 당시 도장골에서의 빨치산 활동과 토벌대의 피습 얘기들은 예사로이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의 증인으로 남아 당시의 아픔을 되뇌이며 젊은이들에게 지리산의 산역사를 알려주던 老 산꾼들은 하나 둘 떠나가고 도장골은 젊은이들에 의해 점점 오염되며 개방되고 있을 뿐이다.
지리산 골골이 깃들인 역사의 아픔과 교훈을 두고두고 전할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 시점임을 도장골에서 느껴본다.




도장골





와룡폭포
와룡폭포에서 사진도 찍고
홍어회에다 약주도 한잔씩 하면서 쉬었다.








청학굴

청학굴의 생수를 마시는 모습

청학굴 옆 비박터






황금능선이 선명하게 조망되고...


청학굴 위에서 숭어회에다 약주를 한잔씩 하고
북어국을 끓여 점심식사를 맛있게 하였다.

시루봉

촛대봉

좌측의 촛대봉과 우측의 천왕봉



산 능선을 굽이 돌며 펼쳐지는 운무의 향연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시루봉

촛대봉







가까이에서 바라본 촛대봉











청학연못을 구경하는 모습






얼음이 언 청학연못
청학(靑鶴)은 날개가 여덟이고 다리가 하나이며 얼굴이 사람같이 생겼다는 상상의 길조(吉鳥)로서 신선이 타고 다닌다는 전설의 새라고 한다. 이 새가 울면 천하가 태평해진다고 하여 옛 사람들은 청학이 사는 청학동을 신선의 고장이라 여겼다 이상향의 청학동 위치는 지금의 삼신봉 아래 청학동과는 다른 개념이다.
촛대봉과 시루봉(장군봉) 능선 중간 서쪽 아래 해발고도가 1500m도 넘는 세석고원에 신비한 연못이 있다. 자연 상태의 연못이 아니고 청학동의 이상향을 완성시키는 의도에서 옛 선인들이 의도적으로 지형을 갖추려는 듯 인공으로 조성된 연못이다. 대슬랩이 앞 물을 막아주고 둥글게 돌조각을 세워 뒷물 길을 막았다.
청학연못의 길이는 대략 10~15m 넓이는 대략 6~7m 정도 되며 깊이는 대략 1m 내외로 짐작되는 타원형의 연못이며 대슬랩에 새겨진 몇 개의 파자(破字)가 있는데 정확한 해석은 아직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청학연못의 조성시기는 사람에 따라 다소 엇갈리는데 대략 150년 전쯤 됏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선인들의 기록을 기초로 하여 고려조까지 거슬러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인구에 회자되는 얘기에 의하면 연못에서는 심심찮게 용오름 현상이 일기도하고 연못 풍경을 찍을라치면 여태 문제 없던 카메라가 갑자기 작동을 멈추는가 하면 갔던 길을 따라 다시 찾아오면 어디로 사라졌는지 연못이 보이지가 않았다고 한다.

세석에서 거림으로 가는 길


세석교





북해도교


천팔교


멋진 소나무

거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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