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는 비가 내리더니 차츰 개기 시작하였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비는 올것 같지 않아서 점심식사를 하고 집에서 가까운 고하도로 향했다. 고하도는 목포에서 약 2km 떨어진거리에 있다.
목포시의 남쪽 해안을 감싸안은 듯 서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고하도는 높은 산(유달산) 밑에 있는 섬이라 하여 고하도 (高下島)라 불렸으며, 보화도 (寶化島), 고하도(高霞島), 칼섬이라고도 불리었다.
삼국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전하며,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에 의해 전략지로 활용되어 왜적의 침투를 막아낸 곳으로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충무공기념비(지방유형문화재 39호)가 있다.
또한 이 지역을 이충무공유적지(지방기념물 10호)로 지정하여 충무공의 뜻을 기리고 있다. 목포항의 관문인 고하도 용머리는 유달산 낙조대나 일등바위의 전경이 아름다우며 밤에는 목포대교와 유달유원지에서 바다와 어우러진 용이 하늘로 승천 할 것 같은 찬란한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 산행일시 : 2014. 11. 2(일)
▣ 기상상황 : 흐리고 바람이 세차게 붐
▣ 산행장소 : 목포 고하도 용머리
▣ 참여인원 : 나홀로
▣ 산행코스 : 이충무공유적지~둘레숲길 입구~큰덕골저수지 삼거리~래박개(정상)~숲길삼거리~용머리길 입구~용머리~공생재활원~짱골저수지~농로~고하도 복지회관~이충무공유적지(원점회귀)
▣ 산행거리 : 7.53km(Gps 측정)
▣ 산행시간 : 2시간 9분(천천히 사진 찍으며 한바퀴를 돔)
▣ 이동수단 : 자가용
▣ 산행사진 및 후기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
선상낚시하는 모습
모충문
모충각
임진왜란때 이충무공이 왜적의 침투를 막아내기 위하여 108일간 주둔했던 곳을 기념하기 위해 고하도에 모충각과 이충무공기념부(지방유형문화제 제 39호)가 서 있으며, 유달산 입구에 동상이 있다.
고하도는 목포시내에서 약 2km 떨어진 남서쪽에 위치한 반달 모양의 섬으로 목포시의 남쪽 해안을 감싸안은듯 서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북쪽비탈은 바다 건너 유달산과 마주하고, 동쪽으로는 영산강 하구둑과 목포공항을 마주하고 있다.
고하도는 임진왜란때 이충무공에 의해 전략지로 활용되어 왜적의 침투를 막아낸 곳으로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충무공기념비(지방유형문화재 39호)가 서 있다.
1722년 충무공의 5대손인 이봉산이 건립하고 남구만이 비문을 짓고 조태구가 글을 쓴 것이며, 비신에는 일제때 일본 군인이 쏜 총탄 자국이 있으나 거의 완전한 상태이다.
또한 이 지역을 지방기념물 10호 이충무공 유적지로 지정하여 충무공의 뜻을 기리고 있다. 충무공은 명량승첩 후 1597년 10월 29일 이곳으로 와 진을 치고 그 이듬해 2월 17일 고금도로 옮기기까지 108일간을 주둔하며 군량미를 비축하고 전력을 재정비하였다.
섬의 둘레는 불과 12km에 지나지 않지만 그만큼 이 섬이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이곳이 무너지면 호남의 곡창지대를 흐르는 영산강을 왜구에게 내어주는 샘이었기 때문이다.
목포의 유달산과 함께 충무공의 전설적 일화와 호국 얼이 서린 섬이며 울돌목과 제주도로 빠진 해로이기도 한 이 곳은 고화도, 보화도, 비노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다.
목포 사람들은 이충무공 기념사업회를 조직하여 매해 4월 28일이면 이곳에서 공의 정신을 추모하는 탄신제를 봉행하고 있다.
현재 여객선 터미널에서 8차례 선박이 왕복운항되고 있어 누구나 쉽게 찾아가서 고하도의 석양을 바라볼 수 있다. 넘실대는 물살을 가로질러 고하도를 가노라면 잠시 세상시름 잊고 옛날에 잠길 수 있을 것이다.
모충각안의 비석
이충무공유적지 관광을 마치고 둘레숲길을 따라 걸었다.
고하도 소나무숲은 정말 멋지다.
고하도 소나무숲
고하도 용오름 둘레숲길 안내도
용머리까지는 2.8km
바위지대
지적삼각점
고하도 용머리
용이 날개를 펴고
하늘로 승천하는 전설을 지닌
고하도 용머리는
밤에 보면 화려한 오색등이
바닷물에 비춰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등산로는 용의 등을 타고
가는 것과 같은 지형으로
산행시 용의 기운을
듬뿍 받을 수 있는 곳이다.
탕건바위
목포시에는 11개의 섬이 있고 그 중 8개 섬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이 8개 섬에 오백여 가구 3천 2백여명이 살아 충무동이란 독립동으로 행정선까지 있다. 목포항을 들어서는 항로곁에 보이는 섬들이다. 서산동 맞은 편에 고하도라는 섬이 있다.
이 섬의 옛이름은 지형 생김새로 고하도라 했는데 이 곳에서 유달산을 바라보는 경관이 좋아 시인묵객이 많이몰려 보화도라고 했다고 한다. 이 고하도의 동쪽의 목포등대가 바라보이는 곳을 '뒷도랑'이라 하고 이 곳 산아래 탕건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폭이 150㎝, 높이가170㎝로 생김새가 옛날 상투머리에 쓰는 탕건형이며 이 바위 3m밑에 샘이 있다.
이 탕건 바위에서는 고하도에 가뭄이 심해지면 기우제를 지내는 탕건바위 놀이가 벌어진다. 양반이 쓴 탕건처럼 생긴 이 바위에 돼지를 잡아 제물로 바쳐 큰 줄로 탕건바위를 끌어당기면서 남도특유의 설소리와 농악을 울린다. 탕건바위 밑에는 옛날 힘센 장수가 많은 금은 보화를 숨겨둔 곳이 있다 한다.
일설로는 궁녀가 숨겼다고 하는 전설도 있다. '양반의 탕건에 돼지의 생피가 흐르는 것을 하나님이어 큰 비를 내려 그 빗물로 말끔히 씻어주사이다' 라는 기원과 비를 내리지 않으면 탕건 바위 밑에 숨겨져 있는 금은 보화를 파내겠다는 위협의무격적인 주술성을 가진 놀이로 간절한 기원과 순박한 유형이 담겨져 있다.
탕건바위 기우제는 탕건바위를 돌며 농악을 울린 뒤 제상이 나오면 산 돼지를 탕건바위 위에 얹어놓는다. 제주가 절을 올리면 모든 줄꾼과 농악대가 함께 절을 올린다. 제주가 크게 외치면서 기원을 한다.
'천지지신은 화위동심하사 이 땅에 큰 비를 내리게 하소서. 비를 내리소서. 만일 비를 내리시지 않는다면 바위밑의 금은보화를 모두 파겠습니다. '이 때에 농악이 울리면서 탕건바위에 줄을 걸어 끌며 매김소리를 받아 줄꾼들이 설소리에 맞춰 줄을 끄는 것이다. 「얼얼러 상사듸여/ 비야 비야 내려라 얼얼러 상사듸여/ 비가 오지 않는다면 금도 캐고 보화도 캐네/ 얼얼러 상사듸여/ 나랏님이 숨겨놓은 금은보화 찾아가세 장군님이 숨겨놓은 금칼보화 찾아다가/ 얼얼러 상사듸여/ 우리목숨 부지하세. 금 나온다. 금 나온다. / 얼얼러 상사듸여/ 이것저것 찾아다가/ 우리목숨 이어가세. 탕건 바위 헐어분다. / 얼얼러 상사듸여」 이렇게 노래로 위협하고 탕건바위 위에서 돼지를 잡아 생피를 뿌리고 제주가 발원하면 「양반 탕건 에 무슨 피가/얼얼러 상사듸여/비내려서 저 피 닦소/얼얼러 상사듸여/저 비 내려 농사지면/부모 공양하며 처자식을 교육하세」하며 노래를 부르고 모닥불을 놓아 탕건바위를 묶었던 밧줄을 태우고 농악을 울리며 춤을 추고 놀다가 꺼진 모닥불의 재를 담이 논밭에 뿌리고 놀이는 끝이난다. 탕건바위를 묶었던 밧줄재는 풍년들게 한다는 믿음때문이다.
탕건바위 안에서 바라본 세상
고하도에서 바라보는 유달산은 한폭의 그림과 같다.
정말 어찌 멋지다 말하지 않으리,,,
목포 앞바다를 가르며 가는 배
아름다운 유달산
보고 또 본다.
목포대교
목포대교는 전라남도 목포시 죽교동의 북항과 유달동의 고하도 사이의 바다를 연결하는 해상교량이다. 진입도로를 포함한 총 연장은 4129m이며, 교량 구간은 3060m(사장교 900m, 접속교 2160m)이다. 너비는 20.9~24.5m에 왕복 4차로이며, 1번국도에 속하는 고하대로(高下大路)의 일부로 자동차 전용도로이다. (주)다산컨설턴트가 설계하고, GS건설(주)·현대건설(주) 등이 시공하였으며, 2004년 11월에 착공하여 2012년 6월 29일에 개통하였다.
교량 형태는 사장교인데, 상판 좌우에 각각 2쌍의 케이블로 지탱하는 일반적인 방식과는 달리 좌우의 케이블을 1쌍으로 줄이고 중앙에 1쌍을 설치하여 3쌍의 케이블이 상판을 지탱하게 하는 '3면배치(3-way) 케이블 공법'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중앙 부분에 높이 167.5m의 다이아몬드 모양의 주탑(主塔) 2개가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으며, 주탑과 주탑 사이의 거리인 주경간장(主徑間長)은 500m이다. 수면에서 교량까지 높이는 53m로 5만t급 선박이 통행할 수 있다. 주탑과 케이블의 모양은 목포의 시조(市鳥)인 학 2마리가 목포 앞바다를 날아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두산백과)
바닷가로 들어서자
파도가 세차게 몰려왔다.
공생재활원, 고아원
고하도 용머리로 가기 전 공생재활원이 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전국의 불량아동을 수용하기 위해 건립된 감화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후 국립목포학원, 다시 재생원으로 개칭돼 고아들을 수용했다.
1960년 재생원은 폐원됐으며, 1984년 공생재활원으로 건립됐다. 대도 조세형도 어린 시절 이곳 감화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박보영 공생재활원 선생은 “1984년 개원해 현재 120여 명의 지적장애인이 생활하고 있다. 공생재활원은 목포의 공생원과 같은 재단”이라고 말했다.
목포 공생원은 1928년 윤치호 전도사가 기독교정신으로 지은 건물이다. 1938년 그는 일본인 여성 윤학자(다우치지즈꼬) 여사와 결혼했으나 6.25 사변 당시 행방불명됐다. 그 후 윤학자 여사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6.25 사변 시 전쟁고아를 보호하는 등 희생과 봉사로 아이들을 키웠다.
박 선생은 “많은 아이들을 보호하다 보니 장애 분류와 전문화된 시설의 필요성을 느껴 현재는 전국에 요양 및 지적장애인 시설 등이 운영되고 있다”며 “일본에도 윤기 회장(윤치호 전도사의 장남)이 노인복지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나라 노인을 대상으로 했으나 현재는 일본 현지인들도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생원을 시작으로 한 공생복지재단은 아동복지 장애인복지 노인복지 직업전문학교 정신보건복지 등 다양한 복지를 선도하는 재단으로 사회에 봉사하고 있다.
황금들판의 벼는 수확을 이미 끝내고
황량함만이 엄습해오는 쓸쓸한 들판으로 남아 있다.
비닐하우스 속에서는
무화과 수확이 한창이었다.
갈대와 억새가 춤추는 농로를 걸으며
내 인생의 길은 어디까지 가게 될런지
잠시 명상에 잠겨본다.
바람에 쓰러질것 같은 갈대
아름드리 억새
고하도마을 전경
사공의 뱃노래가 절로 울려 퍼지는 저녁 노을속 용당귀범,
목포 앞 바다의 용 고하도
관운각은 유달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요. 명칭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비가 온 후 안개가 끼면 산허리에 구름이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위치라서 볼 관자에 구름 운자를 써서 부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곳에서는 목포항 입구에 길게 용처럼 늘어진 '고하도'가 잘 보인다.
고하도는 목포시의 남해안과 마주보고 있는 섬이며 목포 앞 선창에서 약 2km쯤 떨어진 곳에 있다. 목포와 마주하고 있는 섬의 지형이 용의 형상을 하고 있다하며 용머리 또는 병풍처럼 펼쳐있다하여 병풍바위, 병풍도라고 불리기도 하며 순수한 우리말로 칼섬이라고도 한다.
충무공이 1579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가지 108일 동안 주둔하여 군사를 재정비했던 곳이다. 이충무공은 이섬을 전략지로 이용 임진왜란 때 왜적의 육지 침입을 막아낸 곳이다.
장군이 진을 쳤던 흔적과 그의 공적을 가리기 위하여 세워진 모충각이 이곳에 있다. 1722년 8월에 충무공 5대손인 이상봉에 의해 건립한 유허비 비문은 남구만이 친하고 글씨는 조태기님이 썻다.
남구만은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해는 상기 아니 얼었으냐.
재 넘어 사래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냐'이라는 시조를 지은 분이다.
고하도는 일제에 의하여 육지면의 시험재배에 성공한 곳이기도 하다.
고하도의 뒷도랑 마을은 일제시대 조선소가 있었다.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구덩이들이 있어 함수를 보관하기 좋았으며, 배를 정박하기도 좋아 사산동뿐만 아니라 목포 일대의 오줌과 똥은 모두 수거해 '똥배'로 이동하여 함수를 이곳에 모아 두었다 거름이 필요할 때 퍼다 밭에 뿌려 야채농사를 찾지 않았던 것이다.
'공생재활원' 일제강점기인 1938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전국의 불량아동을 수용하기 위해 건립된 감화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후 감화원은 '국립목포학원'으로 개칭되고 다시 '재생원'으로 개칭되어 고아들을 수용하다가 1960년대 폐원되었으며, 1984년 공생재활원이 건립되었다. 대도 조세형도 어린시절 이곳 감화원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야광하면 고하도 용머리죠. 목포항의 관문인 고하도 용머리는 밤에 보면 '화려한 오색등'이 바닷물에 비춰 용이 날개를 펴고 하늘로 승천하는 듯합니다. 용이 우아한 모습으로 여러분을 유혹한다고요.
주칭야광'이라는 말은 '구슬은 야광이라 일컬어지는 것'이 제일이라는 말이지요. 구슬은 본래 붉은 옥석을 가공하여 동그랗게 만든 갓을 말하였는데 후에는 동그란 보석을 통칭하게 되었죠.
야광'이라는 말은 중국 육조시대 '지괴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간보의 수신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옛날 초나라의 신하 수후는 외출하다 우연히 소치는 목동이 한마리 뱀을 죽이는 것을 보았는데, 수후는 뱀이 너무 불쌍해서 깨끗이 닦아 약을 발라주었더니 살아서 돌아갔답니다.
어느날 밤 수후의 집 뜰에 밝은 불빛이 환하게 비췄답니다. 수후는 도적이 들어 횃불을 밝힌 줄 알고 칼을 들고 불빛이 있는 곳을 향하여 다가갔어요.
문밖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려 문을 열자 뱀 한 마리가 구슬을 떨어뜨리고 사라졌다지요. 그 뱀은 바다속 용왕의 아들로 전에 목숨을 구해준 보답을 구슬로 했는데. 그 구슬이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후가 그 구슬을 초나라 왕에게 바치니 왕은 그 이름을 '야광'이라 하였답니다.
도로가에 핀 국화꽃
고하도복지회관
코스모스도 한들한들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면서
목적지로 향했다.
아직까지도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한가롭고 행복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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