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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얘기

월출산(경포대~천황봉~경포대)

◆ 언제 : 2010. 2. 15(월)
◆ 어디로 : 월출산(809m)

◆ 행정구역 : 전라남도 영암군, 강진군

◆ 누구랑 : 나 홀로

◆ 산행코스 : 경포대~바람재~남근바위~천황봉~통천문~경포대 삼거리~약수터~경포대

◆ 산행거리 : 약 10km

◆ 산행시간 : 3시간 35분(10:30 ~ 14:05) - 점심 및 휴식시간 포함

◆ 날씨 : 흐리고 먼 안개

◆ 교통 : 자가용

◆ 산행 소감 : 어제 민족 고유의 설날을 잘 보내고 오늘까지 휴일이라 집에서 쉴까 하다가 집에서 가까운 월출산을 홀로 찾았다. 예상외로 등산객들이 붐비고 있었으며 여유 있게 경포대를 출발 바람재를 경유 천황봉까지 다녀왔다.

 

천왕봉 오르기 전 응달에는 아직도 가시지 않은 눈꽃이 약간 남아 있었으며 천황봉에 올라섰을 때는 차가운 바람이 어떻게 세차게 불어 대던지 손이 얼고 얼굴도 얼고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아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그리고 월출산 계곡에는 물이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여태까지 이렇게 많은 물이 흘러내린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한참을 머물며 점심식사도 하고 과일도 먹고 감상을 하다 왔다. 비록 홀로였지만 행복한 하루였다.

 

◆ 산행지도

 

◆ 산행사진

▲경포대로 향하면서 운전을 하면서 차 안에서 찍어본 월출산 풍경 

 

  

  

  

▲ 경포대지구 등산로 입구 

 

▲ 바람재와 구름다리로 가는 갈림길  

 

▲ 시원하게 흐르고 있는 계곡의 물....아마 엊그제 비가 와서 그런가 보다.

 

▲ S모드로 찍어 보지만 똑딱이의 한계다. 그래도 멋지다.

 

▲ 바람재삼거리에는 제법 눈이 쌓여 있다. 아이젠도 안 가져 왔는데 걱정이다.  

 

▲ 바람재에서 바라본 구정봉 방향...저기 구정봉 정상에 사람이 두명 있는것 같다.  

 

 ▲ 왼쪽 봉우리가 구정봉이고 오른쪽 봉우리가 향로봉이다. 

 

▲ 바람재에서 바라본 천황봉 방향 풍경 

 

  

  

  

  

  

               ▲ 남근바위다. 남자의 거시기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천황봉을 향하여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 

 

 

▲ 바위위에 소나무가 서 있다. 신기하다. 핸드폰으로 뭔가를 담는 산꾼들의 모습도 보인다.

 

  

  

  

  

  

  

  

  

▲ 밀면 떨어져 버릴것 같은 흔들바위의 모습 

 

  

  

▲ 천황봉 아래 응달에는 아직도 눈꽃이 조금 남아 있었다. 

 

  

  

  

  

  

  

  

  

  

  

  

  

  

  

  

  

  

  

  

  

  

 

  

▲ 월출산 정상인 천황봉....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한참을 기다렸다 한장 찍었다. 

 

▲ 바람재에서 올라 올때는 바람이 별로 불지 않았는데 천황봉에 올라서니 세찬바람이 분다. 

 

▲ 바람이 얼마나 매섭고 세차던지 얼굴도 얼고 손도 얼고 귀는 떨어져 나갈것 같다.

 

  

  

▲ 추워서 도저히 천황봉에 머물 수 없어 하산하여 오다보니 통천문에 도착 

 

  

  

▲ 경포대삼거리에서 경포대로 하산하다보면 대나무 숲도 통과한다.

 

▲ 약수터도 있다. 여러 사람들이 옆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 바위에 소나무가 있어 줌을 사용하여 땡겨보았다. 역시 똑딱이의 한계를 실감한다. 

 

▲ 시원하게 하늘로 쭉쭉뻗은 편백나무...이런길을 걸어서 계속 하산 

 

▲ 시원스럽게 물이 흘러 내리는 계곡에서 감상을 하며 떡과 과일로 점심식사

 

▲ 금릉교에 도착  

 

▲ 매월 전국 일출 일몰시간....다음에는 일출을 보러 한번 가야겠다. 

 

▲ 경포대주차장에 도착함으로써 나홀로 여유로운 월출산 산행 마무리...행복한 하루였다.

 

2010. 2. 15(월) 월출산 등산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월남사지에 들렸다.

 

월남사지는 월남마을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월남사터이다.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려시대에 진각국사(1178∼1234)가 세운 것으로 되어있지만, 경내 삼층석탑의 규모나 양식으로 보면 그 이전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폐사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으나 이 일대의 절이 정유재란 당시 병화로 소실되고 ‘무위사’만 남았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정유재란때 소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면 양쪽편으로 삼층석탑과 진각국사비가 있다.

 

최근에 삼층석탑 근처 민가에서 석탑의 지붕돌이 발견되었는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원래는 2개의 석탑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발견된 지붕돌의 세부기법이 월남사터에 있는 백제계 양식인 삼층석탑과는 다른 신라계 양식의 기법이라는 점이다.

 

한 절터에서 백제계 석탑과 신라계 양식의 석탑이 함께 자리하게된 이유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진각국사를 기리기 위해서 세운 진각국사비는 비석의 위쪽이 깨져 없어졌고, 앞면 일부도 떨어졌으나 남아있는 바닥돌과 거북의 기세, 비석의 폭으로 보아 매우 웅장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이곳에는 금당터 초석, 축대가 남아있으며, 옛 기와, 청자, 백자조각이 츨토되고 있다.  

 

 

백제의 석탑이라고 하기도 하니 월남사는 백제시대 때 창건된 사찰로 보는 견해가 유력 해진다.

 

월남사의 폐찰 년대는 정확히 전해진 기록은 없으나「무위사사적기」에 ‘ 월남사는 임진왜란(1592년)때 왜구의 침략에 의해 폐찰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어 폐찰된 시기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마당 한가운데는 월남 사지 삼층석탑(보물 제298호)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튼튼하고 매우 당당해 보이는 탑이다. 이 탑의 결구 수법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여러 개의 판 석형 석재를 끼어 결구하였으니 전탑이라고 할 수 없다.

 

월남사지 석탑 또는 월남사지 삼층석탑으로 해야 하는 게 옳겠다.

 

또 한 가지 이 탑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은 판 석형 석재 사이에 쇳물을 녹여 부어서 결구 한 방법이 매우 특이하다.

 

  

  

 월남사지3층석탑은 보물 제298호이다. 

 

  

  

  

  

  

  

 

월남사는 고려 중기에 진각국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창건 이후의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진각국사의 성은 최씨이고 이름은 혜심(慧諶)으로 24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어머니의 죽음으로 출가를 하게 되었다.
 
출가 후 보조선사 밑에서 수도를 하였고 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대선사(大禪師)가 되었으며, 고종 21년(1234)에 57세로 입적하였다. 월
 
남사 터에 서 있는 이 비는 절을 창건한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린 형태이다.
 
받침돌인 거북은 입에 구슬을 문 상태로 긴 목을 빼어들고 네 발을 단단히 짚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매우 강렬하고 사실적이다.
 
발톱에서 보이는 현실성이나 목과 머리조각의 세부표현 또한 전체적인 균형과 잘 어우러져 한층 돋보인다.
 
비몸은 원래 매우 컸다고 하나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아랫부분만 남아 있으며,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비문은 잘 보이지 않는다.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이규보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며, 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 고종 때로 추정된다.


*문화재명칭변경(2002.03.12) : 월남사지석비→월남사지진각국사비

-사유:월남사지석비는 월나사의 창건주인 진각국사(1178∼1234)의 비로 이규보(1168∼1241)가 비문을 지었고,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등의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이 되고 1973년 음기의 판독을 통해 진각국사비임이 확인되어 「월남사지진각국사비」로 명명하고자 함.

 

  

 월남사지진각국사비는 보물 제313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