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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내 중년을 지켜낸 한국의 명산 지리산!

내 중년을 지켜낸 건 한국의 명산이다.

그중에서도 지리산이 최고다.

힘에 겨운 시간들이 어깨를 짓누르던 어느 봄날에 나는 처음 지리산과 눈이 맞았다.

전생에 나는 아마도 지리산을 휘감아 부는 바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거기 천지 사방 숲에서 숨이 멎을 듯 나를 향해 울려오던 개량할 수 없는 향기!

첫새벽 등짐을 꾸려 집을 나서는 일이 산행을 시작한 지 16년 만에 셀 수도 없이 많았으며 지리산에 드는 일이 내겐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보다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사람마다 사는 법이 다르고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 무엇으로도 포장되지 않은 시간이 그곳에 있었기에 그 시간에 기대어 슬픈 것들 밀려오면 울기도 하고 벅찬 것들 다가오면 웃기도 했다.

너와 화해도 하고,
너를 용서도 하고,
내 사랑의 침식을 안타까워도 하고,
어설픈 청춘의 한때 길들여지지 않은 자유가 떠오르기도 했다.

지리산이 내게 허락해 준 가늠할 수 없는 무형의 재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 했던가.

제석봉 고사목 아래 7월 땡볕이 뜨거워 머리를 흔들며 온몸으로 바람을 맞던 산오이풀,

물안개 할랑할랑 춤추는 몽환적인 세석고원 환하게 등불을 밝히던 구절초,

반쯤 헐렁해진 육신을 뉘고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 별이 가슴으로 내리던 벽소령의 밤,

반야 중봉의 슬픈 낙조,

하얀 눈꽃이 겨워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내 등을 떠밀어 주던 천왕봉 가는 길,

영랑대에서 바라본 그 열렬한 시월 이파리들의 군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무박으로 화엄사~대원사를 종주하던 날들의 스릴과 추억,

가도 가도 허기진 마음 못다 채우는 99골 지리 골짜기!

'괜찮아, 괜찮아' 지리산은 늘 내게 말한다.

때론 새의 울음으로,
때론 너른 바위의 품으로,
때론 물소리로,
때론 바람소리로,
다 괜찮을 거라 말한다.

법정 스님은 비움과 내려놓음에 대해
'행복은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느냐다'라고 내 욕심에 일침을 놓았다.

지리산에 들면 그 무욕의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폭우로 찢긴 계곡을 오르며
지난날 이념의 잣대 끝에
서러운 투쟁의 피가 흥건했을 골짜기의 기억으로
가슴이 죄어 오기도 했다.

폭설로 입산 통제가 되어 가던 길을 되돌아올 때도

장마철 폭우로 통제가 되어 오르지 못한 때에도

짝사랑이 걸쳐놓은 절절한 시간처럼
차곡차곡 쌓여 가는 지리산 사랑이 있었다.

가만가만 입안에서 옹알이를 해 본다.

지. 리. 산.

입안이 향기로워진다.
그대로 사랑이 되는,
그대로 울림이 되는,
그대로 그리움이 되는,
그대로 새가 되는,
그대로 청청한 나무가 되는...

언젠가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먼 여행길에도

지리산 어느 골짜기 묻어 둔
내 슬픔과
내 기쁨과
내 기다림과
내 사랑이
함께 할 수 있기를...

내 몸 어딘가에서 고로쇠 수액 같은 맑은 피 흘러

내 몸 어디에서 곰취 향 배어나는 그런 영혼으로 떠돌았으면 좋겠다.

그리되기를...
난 또 주섬주섬 짐을 꾸릴 것이다.

떠나기 위해서...
내 지리산 사랑의 방식은 늘 이러하다.

- 좋은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