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산은 예부터 영혼이 거쳐가는 곳이라 하여 영달산이라 불렸다. 동쪽에서 해가 떠오를 때 그 햇빛을 받아 봉우리가 마치 쇠가 녹아내리는 듯한 색으로 변한다 하여 유달산(鍮達山)이라 하였다. 이후 구한말 대학자인 무정정만조가 유배되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유달산에서 시회를 열자 자극을 받은 지방 선비들이 유달정(儒達亭) 건립을 논의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산 이름도 유달산(儒達山)이 되었다.
'유달산에 오르지 않고 목포에 가봤다고 하지 마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유달산을 빼놓고는 목포를 이야기할 수 없다. 유달산은 목포의 상징이며, 목포 시민들이 사랑하는 임이다.
그렇다고 유달산이 크거나 높지는 않다. 해발 228m. 높지 않지만, 기암괴석과 절벽이 많아 고산준령 못지않게 경관이 수려하다. 유달산에 대한 목포 시민의 애정과 자부심은 해발 1천m 이상의 명산을 향한 동경보다 더 강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유달산은 서남쪽으로 뻗어내린 노령산맥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다부지고 잘생긴 막내 산이다. 한반도 서남쪽 영토는 유달산에서 육지가 끝나고 다도해로 바뀐다. 그래서 유달산에 오르면 목포시가 한눈에 들어오고, 다도해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험한 바위산인 유달산에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이 있다. 많은 시민이 운동과 휴식을 위해 오래전부터 걷던 흙길 구간이 대부분이다. 오랫동안 다져진 흙길은 여행자의 심신을 편안하고 느긋하게 풀어주는 듯하다.
둘레길은 약 6㎞로, 걷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30분 내외가 될 것 같다. 하지만 둘레길 주변에 문화재, 전시관, 유적, 작은 공원 등이 많아 이리저리 다니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둘레길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을 꼽으라면 노적봉, 이순신 장군 동상, 이난영 노래비가 아닐까 싶다. 임진왜란 때 이 장군이 짚과 섶으로 덮어 군량미가 산더미처럼 쌓인 것같이 보이도록 위장해 적의 사기를 꺾었다는 이야기가 내려오는 곳이 노적봉이다. 장군의 동상은 노적봉을 바라보고 있다.
이난영 노래비는 88년 전인 1935년에 발표된 후, 아직 애창되는 대중가요 '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 이난영을 기린다. 일제 강점기를 산 조선인의 설움이 서린 노랫말과 가락의 애잔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어 '목포의 눈물'은 오래도록 국민가요 목록에서 빠지지 않을 성싶다.
적산 가옥들이 여태 남아있는 목포근대문화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대학루에 서면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승전의 기반을 다졌던 섬인 고하도, 목포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된 목포대교가 다도해를 배경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시계가 귀하던 시절, 목포에서는 포를 쏘아 정오를 알렸다. 그 포가 놓인 오포대가 대학루 옆에 있다. 낙조대에서는 올망졸망한 섬들 사이로 떨어지는 금빛 태양과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둘레길을 돌고 나면 정상에 올라가고 싶은 의욕을 억누르기 어렵다. 정상과 이어지는 길은 둘레길에 여럿 있다. 경사가 급한 곳이 있지만 둘레길에서 정상까지 멀지 않고 안전한 탐방로가 조성돼 있기 때문에 시간만 허락한다면 다녀오길 권한다. 정상은 '일등바위'라고 불리는 우람한 돌산이다.
정상 밑에 이등바위, 삼등바위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일등바위에서 심판을 받은 뒤 이등바위로 이동해 대기하다가 용, 학, 거북 등에 실려 극락, 용궁 등 지정받은 곳으로 옮겨간다. 바닷가 땅끝에 위치한 유달산을 영혼이 거쳐 가는 곳이라며 목포인들이 일찍부터 우러러보았음을 전설에서 알 수 있다.
유달산은 목포 시민들만의 휴식처가 아니다. 전국적인 명소여서 연중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2019년에 아시아 최고의 노선으로 평가받는 목포 해상케이블카가 개통된 뒤에는 외지 관광객이 더 많아졌다. 길이 3.23㎞로, 유달산과 고하도, 목포 북항을 잇는 이 케이블카는 산, 바다, 도시를 아우르는 압도적인 경관을 제공한다.
용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용섬으로도 불리는 고하도는 이순신 장군이 1597년 9월 울돌목에서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뒤,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108일 동안 머물며 전력을 재정비했던 장소이다. 전라우수영이 불에 타 진지로서 기능을 상실했을 때 이순신은 고하도에 수군 사령부를 설치해 병사를 모집하고 군량미를 모으는 한편 전선을 수리하고 건조해 조선 수군을 재건했다.
이충무공은 1598년 2월 전선을 이끌고 강진 고금도로 진을 옮겼으며 같은 해 10월 노량해전에서 일본군을 몰아내고 임진왜란 7년 전쟁의 마지막을 승리로 장식할 수 있었다. 고하도는 이순신이 힘을 기르고 축적한 곳,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터전이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고하도에 내리면 1~2시간 정도 산책하거나, 고하도 전망대에서 유달산과 목포 시내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고하도에는 길이 1.8㎞의 해상 데크 길이 만들어져 있다.
데크 길에 서면, 마치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착각이 일고, 유달산, 목포 시내, 목포 대교, 검푸른 목포 앞바다가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일등바위, 이등바위 등 유달산 바위들이 병풍처럼 옆으로 길게 펼쳐진다. 유달산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명소가 고하도 데크 길이다.
목포는 1897년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개항한 항구다. 외세에 의해 강제로 열렸던 다른 항구들과 달리 고종의 의지에 따라 자주적으로 개항했다. 1932년 인구 6만으로 전국 6대 도시로 급성장했다. 목포가 일제 강점기에 번성했던 것은 일제가 쌀, 목화, 소금 등 호남 지방에 풍부했던 물자를 수탈해 본국으로 이송하는 거점이었기 때문이다.
근대 목포의 흔적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근대 건축물 등에서 볼 수 있다. 유달산 기슭에 자리 잡은 목포근대역사관 1관 건물은 1900년 일본영사관으로 지어진 서구식 근대 건축물로, 건립 당시의 내·외관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목포근대역사관 2관은 일제가 한반도 자원 수탈을 위해 세웠던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에 들어서 있다. 두 건물 모두 외관이 유려하다.
목포는 강릉, 전주, 안동과 함께 4대 관광거점 도시다. 목포를 알면 왜 4대 관광도시로 선정됐는지 이해하게 된다. 목포는 근대역사문화 유산의 보고이다. 미술, 문학, 대중음악 등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인을 많이 배출했다. 세발낙지, 홍어삼합, 민어회, 꽃게 무침, 갈치조림, 병어회, 준치 무침, 아귀탕, 우럭 지리 등 '목포 9미'는 목포를 맛의 도시로 자리매김한다.
동쪽으로 영암 월출산, 서쪽으로 신안군 '천사 섬', 북쪽으로 무안, 남쪽으로 해남을 바라보는 목포는 외달도, 달리도, 율도 등 수려한 천연 경관의 다도해 섬을 끼고 있다. 목포의 자연, 역사, 문화를 접하면 목포의 매력과 저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등산·여행·맛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포 초당산공원 맨발로 청춘길에서 어싱&접지&맨발 걷기 (1) | 2023.06.15 |
---|---|
청양 칠갑산(장곡사~천장호) (1) | 2023.06.13 |
목포 초당산공원 맨발로 청춘길 (0) | 2023.06.10 |
목포 양을산 맨발로 청춘길~양을산 산림욕장~양을산둘레숲길 (0) | 2023.06.10 |
목포 부흥산 둘레숲길 (0) | 2023.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