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행일시 : 2013. 9. 7(토요일)
▣ 날 씨 : 오전에는 흐렸으나 차차 맑고 무더웠음
▣ 산행장소 : 황금산(156m)
▣ 행정구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참여인원 : 희망토요산악회 34명 그리고 나
▣ 산행코스 : 주차장 ~ 황금산 ~ 헬기장 ~ 끝골 ~ 굴금 ~ 몽돌해변 ~ 황금산 ~ 코끼리바위 ~ 주차장 ~ 서산 아라메길 ~ 대진초교
▣ 산행거리 : 12.0km(Gps 측정)
▣ 소요시간 : 4시간 25분(10:30~14:25, 휴식 및 점심시간 포함)
▣ 교 통 : 광주까지는 자가용, 염주체육관에서 부터는 산악회 버스
▣ 산행후기
서산 9경 중 서산 7경에 속하는 황금산 산행과 서산 아라메길 트레킹을 하기 위하여 새벽 05:00에 집을 나섰다. 염주체육관에서 06:30분에 출발한 버스는 황금산 주차장에 10:30분에 도착을 한다. 그러니까 4시간이 걸린 셈이다. 광주에서도 아주 먼거리이다.
황금산은 156m의 나지막한 산으로, 산행보다는 해안선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대산석유화학단지가 들어오기 전만 해도 이곳은 황금빛 모래가 가득하여, 이곳 산지명이 황금산이라고 했단다.
황금산의 능선을 타고 뻗은 해안 절개지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작고 볼품이 없어 보이지만 그 숲길은 감탄할 만큼 아름다웠다. 숲 그늘이 짙어 햇볕 쪼일 일 없으니 특히 여성들이 좋아할 만하다. 길도 가파르지 않고 멀지 않아 산책에는 그만이다.
황금산 매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중턱의 네 갈래 길에서 곧장 내려 가보니 스러져 풀 섶에 덮인 절터를 지나 온통 돌로 뒤덮인 해변이 나왔다.
그 해변은 주상절리의 절벽해안으로서 온통 돌무더기인데 추락한 주상절리 암벽의 파편이다. 해변 오른쪽을 막은 산자락 가운데로 가파른 통로가 보였다. 설치된 밧줄을 잡고 올라가니 비경의 해안이 숨겨져 있었다.
주상절리의 절벽이 해안으로 장대하게 치솟았고 그 절벽은 낙락장송의 소나무로 장식된 모습이었다. 향나무가 직벽에 붙어 자라는 울릉도 절벽해안을 연상케 하는 선경이었다.
서해에서 주상절리 절벽을 본 것도 희한하지만 그 절벽에 소나무가 뿌리를 박고 자라는 모습은 더더욱 신기하였다. 그 바위해안을 걷다보니 코끼리가 긴 코를 바다에 대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보이는 구멍이 뚫린 아치형 바위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코끼리바위였다. 오늘의 하일라이트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황금산 산행을 마치고는 서둘러 서산 아라메길 트레킹에 나섰다. 서산 아라메길이란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메를 합친말로 바다와 산이 만나는 서산지역의 특색을 갖춘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대화와 소통의 공간으로 아늑함과 포근함이 담긴 친환경 스트레칭 코스이다.
서산 아라메길은 자연스러운 길을 따라 서산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볼 수 있는 길이며 언제든지 가족, 친구들과 정겹게 걸으며 자연 그대로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아라메길은 시작과 끝이 없는 길이며 발걸음이 처음 가는 곳이 시작점이고 멈추는 그 곳이 종점이다.
걷는 사람에 따라서 아라메길은 다양한 본인만의 길이 될 수도 있다. 제주 올레길의 인기몰이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무리한 등산보다는 자연과 대화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친환경 트레킹이 유행하면서 황금산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산과 바다 미소를 품은 느린 산책길 서산 아라메(Areme)길은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메’를 합친 말로 바다와 산이 만나는 서산지역 특색을 갖춘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대화와 소통의 공간으로 아늑함과 포근함이 담긴 친환경 트레킹코스이다.
당초 계획은 황금산주차장에서 벌천포해수욕장까지 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가을 햇볕이 너무나도 따가워 종주를 포기하고 대진초까지만 진행을 하였다. 다음에 또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때는 종주를 할것이다.
▣ 산행지도


▣ 산행사진

주차장에서 황금산 들머리로 이동을 하고 있는 모습


산행 시작


황금산에 설치된 삼각점

황금산사



황금산

헬기장

푸른바다위에 뜬 작은섬



몽돌해변


해변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








밧줄을 잡고 내려오는 모습










코끼리바위에서 인증샷


황금산 산행을 마치고 서산 아라메길 트레킹 시작









염전에서 인증샷



무더운 날씨때문에 대진초교에서 아라메길 트레킹 종료




조선말기의 가옥으로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 김좌진(1889~1930) 장군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
1992년에 터만 남아 있던 곳에 안채와 문간채, 사랑채를 복원하였다. 매년 음력 12월 25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김좌진 장군은 1913년에 광복단 활동으로 3년간 옥고를 겪은 후 1918년에 만주로 건너갔으며, 그 후 항일전투에 앞장섰다.
1 920년 10월 청산리에서 일본군 3천여명을 섬멸하여,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승리를 이룩하였다.
1930년에 고려공산청년회 소속 단원 박상실의 흉탄에 맞아 순절하였다.
구국의 영웅, 만주벌 호랑이 백야 김좌진 장군”
김좌진 장군은 어릴 적부터 말타기와 전쟁놀이를 좋아하는 호방한 성격이었다고 전해진다.
15세 때 노복 30여 명 앞에서 종문서를 모두 태우고 논밭을 골고루 나눠준 일은 장군의 성품을 나타내는 일화로 유명하다.
무관학교를 세우기 위해 군자금을 모집하다 일본경찰에 잡혀 3년간의 감옥 살이를 한 후 북간도로 건너 가서 순절할 때 까지 항일전투에 전력을 바쳤다.
김좌진 장군은 가슴 속 절절한 망국의 한이 담긴 우국시 ‘단장지통’을 남기기도 했다.
현재 독립기념관에는 이 시를 적은 어록비가 서있다.
적막한 달밤에 칼머리의 바람은 세찬데
칼끝에 찬서리가 고국생각을 돋구누나
삼천리 금수강산에 왜놈이 웬말인가
단장의 아픈마음 쓰러버릴 길 없구나


백야 김좌진(1889∼1930) 장군이 살았던 곳이다.
선생은 충청남도 홍성 출신으로 대한제국 후기의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후 청년학우회 등의 간부를 지냈고, 1913년에 대한제국 광복단에 가입하여 자금을 모으다가 체포되어 3년간 복역한 후 1917년 만주로 망명하였는데, 이후 13년간 평생을 항일전투에 몸바쳤다.
1920년 10월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을 섬멸하였는데 이것이 독립 전투상 승리의 금자탑을 세운 일로 기록되는 청산리전투이다.
1929년 정신, 이붕해 등과 함께 한족총연합회를 조직하여 주석에 취임하고, 만주에 거주하는 동포의 교육과 민생에 주력했다.
한편 중국의 항일 세력과 연합하여 대일 항전을 준비하던 중 1930년 공산당원의 흉탄에 순절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받았으며 홍성역 앞에 그의 동상이 서 있다.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광이 따로 있고 밖에는 마구간이 있다.
안채는 앞면 8칸·옆면 3칸의 기와집으로 서쪽을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2칸 부엌이 있고, 아랫방과 윗방 각 한 칸씩 있으며, 통칸의 대청이 있다.
그 위에 방이 한 칸 있고 끝으로 툇마루가 있다.
방 앞으로 툇마루가 있는데 맨 끝방 주위에는 툇마루를 한 칸 높여 누각처럼 만들었다.
마당 한쪽에 우물이 있으며 밖에 있는 마구간은 화장실과 마구를 3칸 집에 만들었다.
터만 남아 있던 곳에 1992년에 안채와 문간채, 사랑채를 복원하였다.

목욕을 하고 홍성 김좌진 장군 생가지로 이동하여 잠시 구경 및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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