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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진도 금골산(금곡마을회관~금골산)

▣ 산행일자 : 2016. 03. 21(월)

▣ 기상상황 : 흐리고 안개자욱

▣ 산행장소 : 금골산(195m)

▣ 행정구역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 산행코스 : 금곡마을복지회관~고인돌~정자~금골산~금골산주차장~해언사~금골산오층석탑~금곡마을복지회관

▣ 산행거리 : 3.63km(Gps 측정)

▣ 산행시간 : 1시간 34분

▣ 이동수단 : 자가용

▣ 산행후기

오늘은 월요일이지만 쉬는 날이다. 그런데 오후에 마눌을 데리러 가야한다. 따라서 멀리는 못가고 가까운 진도 금골산을 찾았다. 금골산은 해발 195m에 불과하지만 산 전체가 거대한 바위로 우뚝 솟은 기이한 산이다. 금골산은 정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조각가가 일일이 예술작품을 조각해 놓은 것 같다.

 

수십 길 절벽에는 층층바위를 이룬 곳 구멍이 숭숭 뚫린 곳이 있는가 하면 보는 방향에 따라 사람으로 또는 짐승으로 연상케 하는 기암괴석들이 산 전체를 수 놓고 있다. 여기다가 황색, 흑색, 백색, 회색 등 기암마다 색깔을 달리하고 있어 그 아름다움이 빼어나기 그지 없어 예부터 ‘진도의 금강(金剛)’이라고 불리어 오고 있다.

 

산자락에는 산의 규모에 비하면 해묵은 천년고찰 해원사(海院寺) 또는 해언사로 불리는 절이 있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높이 4.5m인 이 석탑은 석질은 별로 단단하지 않지만 보물로 지정된 이유는 고려 후기 작품이면서도 정읍 은선리에 있는 삼층석탑과 거의 같은 백제탑의 양식이 가미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해언사(태고종 소속)는 한동안 금골사(金骨寺)로 불리어 온 절이었는데 주지인 지수(智洙) 스님이 옛날 이름을 되찾는다는 의미에서 4년 전 개칭했다.

 

해언사는 옛날 도선국사가 3천 8백 군데의 사찰을 정할 때 그중 한 곳으로 정한 곳이라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해언사 위 수십길 절벽 위 자연석굴 속에 있는 마애불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도 전해진다. 이굴속에는 늙은 스님과 상좌 한 사람이 살았는데 바위구멍에서 매일 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쌀만 나왔고 식객이 더 늘더라도 절대 욕심을 버리고 그 나온 쌀만으로 먹고 살아야 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의외로 많은 손님들이 찾아와 두 사람분 쌀만 가지고는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늙은 중이 화를 내며 ‘이놈의 구멍은 인정사정도 없더란 말이냐’하면서 더 많은 쌀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쌀구멍을 쑤셨다. 그러나 쌀은 더 나오지 않고 홧김에 쑤신 구멍만 망가지고 그 이후로는 구멍에서 한 톨의 쌀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놀라움과 후회에 잠긴 노승은 상좌와 함께 더 이상 먹을 것이 없는 이곳을 떠나고 말았다는 얘기가 그것이다.

 

이 굴속에 양각되어 있는 마애여래좌상 가슴 아래 움푹 패인 사각형 구멍이 바로 전설속의 쌀구멍이다. 지수 스님에 의하면 6.25 때에는 순경 3형제가 인민군에게 잡혀와 총살을 당했는데 세 사람 모두 총알이 빗나가 살아남았을 정도로 이 산은 영험함이 있는 산이라고 한다.

 

오늘 비록 산행코스는 짧았지만 볼것은 거의 다 보고 온듯한 느낌을 받는다. 가까운 산이라고, 산행코스가 짧은 산이라고, 혼자 가기 싫다는 등 여러가지 이유로 여태까지 가보지 못한 산을 다녀왔는것이 큰 추억거리가 되었다. 앞으로도 홀로 여유로움을 가지며 근교산행에 나서는 일이 많아질것 같다.

 

▣ 산행지도 및 고도표

▣ 산행사진

↑금골마을복지회관에서 산행시작

 

↑군내보건지소

 

↑군내보건지소 뒷편에 있는 등산안내도

 

↑도로를 따라 산행

 

 

↑아름답게 핀 매화

 

 

 

 

 

 

 

↑수선화

 

 

 

 

↑고인돌

 

 

 

↑정자

 

 

 

 

 

 

 

↑진달래

 

 

 

 

 

 

 

 

 

 

 

 

 

 

 

 

 

 

 

↑이제 피기 시작하는 진달래

 

 

↑생강나무

 

 

 

 

 

↑바위를 올라가는 사다리

 

 

 

 

 

 

 

 

 

 

 

↑금골산 마애여래좌상 - 문화재자료 제110호


해발 198m에 불과하지만 금골산은 산 전체가 거대한 바위로 우뚝 솟은 기이한 산이다. 금골산은 정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조각가가 일일이 예술작품을 조각해 놓은 것 같다. 수십 길 절벽에는 층층바위를 이룬 곳 구멍이 숭숭 뚫린 곳이 있는가 하면 보는 방향에 따라 사람으로 또는 짐승으로 연상케 하는 기암괴석들이 산 전체를 수 놓고 있다.

 

여기다가 황색 흑색 백색 회색 등 기암마다 색깔을 달리하고 있어 그 아름다움이 빼어나기 그지 없어 예부터 ‘진도의 금강(金剛)’이라고 불리어 오고 있다. 산자락에는 산의 규모에 비하면 해묵은 천년고찰 해원사(海院寺) 또는 해언사로 불리는 절이 있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높이 4.5m인 이 석탑은 석질은 별로 단단하지 않지만 보물로 지정된 이유는 고려 후기 작품이면서도 정읍 은선리에 있는 삼층석탑과 거의 같은 백제탑의 양식이 가미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해언사(태고종 소속)는 한동안 금골사(金骨寺)로 불리어 온 절이었는데 주지인 지수(智洙) 스님이 옛날 이름을 되찾는다는 의미에서 4년 전 개칭했다. 해언사는 옛날 도선국사가 3천 8백 군데의 사찰을 정할 때 그중 한 곳으로 정한 곳이라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해언사 위 수십길 절벽 위 자연석굴 속에 있는 마애불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도 전해진다.


이 굴속에는 늙은 스님과 상좌 한 사람이 살았는데 바위구멍에서 매일 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쌀만 나왔고 식객이 더 늘더라도 절대 욕심을 버리고 그 나온 쌀만으로 먹고 살아야 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의외로 많은 손님들이 찾아와 두 사람분 쌀만 가지고는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늙은 중이 화를 내며 ‘이놈의 구멍은 인정사정도 없더란 말이냐’하면서 더 많은 쌀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쌀구멍을 쑤셨다. 그러나 쌀은 더 나오지 않고 홧김에 쑤신 구멍만 망가지고 그 이후로는 구멍에서 한 톨의 쌀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놀라움과 후회에 잠긴 노승은 상좌와 함께 더 이상 먹을 것이 없는 이곳을 떠나고 말았다는 얘기가 그것이다.


이 굴속에 양각되어 있는 마애여래좌상 가슴 아래 움푹 패인 사각형 구멍이 바로 전설속의 쌀구멍이다. 지수 스님에 의하면 6.25 때에는 순경 3형제가 인민군에게 잡혀와 총살을 당했는데 세 사람 모두 총알이 빗나가 살아 남았을 정도로 이 산은 영험함이 있는 산이라고 한다.


금골산(해발 198m)을 멀리서 바라보면 흡사 진안 미이산을 닮았다. 우뚝 솟은 산위에 숭숭 뚫어진 구멍바위와 기암괴석이 자리 잡고 있는데 진안 마이산과 다르다면 바위색이 흰색을 띠는가 하면 회색, 황색, 흑색 등 다양하게 있다는 것이다. 진도 사람은 금골산을 두고 진도의 금강으로 부르고 있을 정도지만 금골산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산이다.

 

금골산 또는 개골산이라 부르는 이 산은 1498년 정언 벼슬을 지낸 이주가 무오사화때 이곳으로 유배되어 골산의 절경에 감탄하여 금골산록을 지어 서거정 동문선에 실려 전해지는 명산으로 정상에서 내려 보는 풍경은 산의 높이에 비하여 최고라 말해도 손색이 없겠다. 금골산 입구 금성초등학교 정문안에는 오층석탑이 우뚝 서 있다.

 

금골산 오층석탑 (보물 제529호)은 고려시대 있던 해월사(해원사/ 해언사)가 있을 당시 절에 있던 탑으로 1단 기단 위 5층 석탑을 올렸는데 1층 기단 몸돌을 매우 길게 만든 것은 정읍 은선리 삼층석탑 양식과 흡사하며, 백제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의 양식이 확인되는 고려 후기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탑으로부터 금골산 자락으로 오르면 천년고찰인 해원사(해언사)터에 새롭게 사찰이 자리 잡고 금골산 정산을 거쳐 깍아지른 절벽아래 난간을 따라 내려서면 동굴 속에 금골산 마애불이 자연암굴 정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마애불은 1470년으로 추정되며, 좌우 3.5m 크기의 미륵불이다.

 

자연석굴 마애불을 모신 늙은 스님과 상좌 한 사람이 살았는데 바위구멍에서 매일 두 사람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쌀만 나왔다 한다. 당시 사찰의 불문율로 전하는 것으로 바위에서 나오는 쌀만 가지고 살아야 하였는데 어느 날 많은 불자가 찾아와 음식을 나누먹지 못하게 되자 늙은 중이 구멍을 후비며 더 많은 쌀이 쏟아지길 원하였다.

 

그 결과 구멍은 망가지고 더 이상의 쌀은 나오지 않게 되자 노승은 상좌를 데리고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쌀이 나오는 구멍은 마애불 가슴팍 중앙에 사각난 구멍으로 전설일 뿐 그곳에 부처의 사리나 불상을 모시지 않았나 싶다.

 

 

 

 

 

 

 

 

 

 

 

 

 

 

 

↑철계단

 

 

 

 

 

 

 

↑금골산 정상

 

↑금골산은 진도지맥에 해당

 

 

 

 

 

 

 

 

 

↑운동기구

 

 

 

 

 

 

 

 

 

 

 

 

 

 

 

 

 

 

 

 

 

 

 

 

 

 

↑농업·생활용수 배수지시설

 

 

 

↑금골산주차장

 

↑금골산주차장의 정자

 

 

 

↑금골산주차장 화장실

 

↑금골산관광안내도

 

 

 

 

 

 

 

 

 

 

 

 

 

 

 

 

 

 

 

 

 

 

 

 

 

 

 

 

↑해언사

 

 

 

 

 

 

 

 

 

 

 

 

 

 

 

↑금골산오층석탑

 

진도군 군내면 금골산 어귀에 있는 고려시대 5층석탑으로 보물 제529호(1971년1월8일)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시대부터 이곳에 해월사(海月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절에 속했던 석탑으로 지금 자리한 곳이 원래의 위치로 짐작된다.

 

1단으로 이루어진 기단(基壇)은 4장의 돌로 구성되었으며, 각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두었다. 기단 맨윗돌에는 특별한 장식을 하지않아 두껍고 밋밋한 느낌을 주는데 이러한 양식은 정읍 은선리 3층석탑(보물 제167호)과 비슷하다. 탑신부의 1층 몸돌은 기단에 비해 좁고 기형적으로 길고 높은 매우 특이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지붕돌은 몸돌에 비해 상당히 넓고 두꺼워 불안정한 느낌을 주며, 각 층 지붕돌의 모습에도 차이가 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 또한 1·2·4층은 5단이고, 3층은 4단, 5층은 3단으로 정형화된 양식에서 벗어나 있는 모습이다. 탑의 머리장식부분에는 구슬 모양의 장식만 있을 뿐 다른 부재는 없다.

 

이 탑의 기단부와 1층 몸돌은 매우 길게 조성되어 은선리삼층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는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을 모방한 백제 양식이 국토의 최남단 섬에까지 퍼졌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각 부분의 양식이 독특하고 불규칙적인 면이 많아 탑 양식에 지방색이 많이 드러나게 되는 고려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해원사지(海院寺址)는 진도 군내면 둔전리 94-1번지 일대로 현재의 금성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오층석탑 부근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73년 학교 주변을 정리했을 때 많은 석재와 초석·와편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해원사지는 해언사(海堰寺)·해안사(海岸寺)·해월사(海月寺) 등으로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가장 오래된 기록인 이주(李胄)의 <금골산록(金骨山錄)>에는 해원사(海院寺)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를 따르는 것이다. 금골산록은 1498년(연산군 4년)에 진도로 유배 왔던 이주가 쓴 것으로 <속동문선(續東文選)>에 그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금골산은 진도읍에서 서쪽으로 20리 지점에 있는데, 이 산 아래에 해원사가 있고 9층석탑이 있다.

 

산 위에 삼굴이 있는데 맨 밑의 서굴은 창건한 연대를 알 수 없으나 일행(一行)이란 스님이 향나무로 16나한을 조성하여 굴에 안치하고, 굴의 곁에 별도로 고찰 6~7칸 있어 스님들이 거처하고 있다. 또한 동굴의 주사(廚舍)는 모두 비바람에 퇴락되었으나 굴 북쪽 비탈을 깎아서 미륵불을 만들었는데 옛날 군수 유호지(柳好池)[1469~1472 진도군수 재임]가 만들었다.”

 

이와 같은 해원사의 기록은 금골산록에만 있고, 당시 고기(古記)로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해원사는 이때까지 명맥만 유지해 오다가 금골산록이 기록된 후인 16세기 이후에 폐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

 

 

↑이순신장군 동상

 

 

 

 

 

↑금성초교 

 

↑군내게이트볼장

 

 

 

↑금골산 전체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