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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목포 유달산(유달산주차장~일등바위~이등바위)

▣ 산행일자 : 2016. 03. 27(일)

▣ 기상상황 : 박무

▣ 산행장소 : 유달산(229.5m)

▣ 행정구역 : 전라남도 목포시 죽교동

▣ 산행코스 : 유달산주차장~노적봉~일등봉~이등봉~혜인여고~조각공원~문화의집~유달산주차장(원점회귀)

▣ 산행거리 : 5.34km(Gps 측정)

▣ 산행시간 : 2시간 35분

▣ 이동수단 : 자가용

▣ 산행후기

꽃피는유달산축제를 4월 9일부터 하므로 개나리의 상태가 어쩐지 살펴 보려고 유달산을 찾았다. 유달산에 도착하자 마자 애마를 주차하고 거리를 걷는데 전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대만원을 이루고 있었으며 때로는 가족단위로 또는 다정한 연인들끼리 데이트를 즐기며 일등봉에 올라 다도해의 시원한 풍경을 바라보며 환호를 지르는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삼학도, 갓바위와 함께 목포의 3대 관광 명소 중 하나인 유달산(儒達山, 229.5m)은 기암절벽이 첩첩하여 호남의 개골이라고도 하며, 목포 8경 중에서도 제1경으로 꼽히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정상에 서면 목포시와 다도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으며, 예부터 영혼이 거쳐 가는 곳이라 하여 영달산(靈達山)이라 불렸다.

동쪽에서 해가 떠오를 때 그 햇빛을 받아 봉우리가 마치 쇠가 녹아내리는 듯한 색으로 변한다 하여 유달산(鍮達山)이라 하였다. 이후 구한말 대학자인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가 유배되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유달산에서 시회를 열자 자극을 받은 지방선비들이 유달정(儒達亭) 건립을 논의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산 이름도 유달산(儒達山)이 되었다.

노적봉을 비롯하여 영혼이 심판을 받는다하여 이름 붙여진 유달산의 최고봉인 일등바위(율동바위)와 심판받은 영혼이 이동한다하여 이름 지어진 이등바위(이동바위)로 나눠진 유달산은 갖가지 기암괴석과 병풍처럼 솟아오른 기암절벽이 첩첩하며 그 옛날 소식을 전하기 위해 봉수를 올렸던 봉수대와 달성사, 반야사 등의 전통사찰을 볼 수 있다.

유달산(儒達山)은 온 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는 바위산이다. 날카로운 암봉들이 많은 유달산은 악하고 모난 기운을 없애려고 많은 나무를 식재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하는데, 바위와 수목이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고 있으며 산마루마다 칼날 같은 암봉들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어 목포 사람들의 단단한 기개를 보여 주는 듯하다. 자연의 기묘한 조화로 만들어진 유달산의 수많은 기암괴석들은 오랜 세월동안 전설과 사연을 간직하면서 목포를 굽어보고 있다.

 

그런데 개나리는 만개가 되어 아마도 이번주가 절정인것 같다. 너무 예쁘게 피어 있었다. 벚꽃은 아직인데 아마 축제기간 동안에는 개나리는 다 지고 벚꽃만 남아있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사실 시기를 맞추기란 어렵지만 다음주까지도 개나리가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오고 가는 관광객들과 보조를 맞추며 사진도 찍어주고 이야기도 나누며 여유롭게 유달산을 한바퀴 돌아 보고왔다.

 

▣ 산행지도 및 고도표

 

 

▣ 산행사진

유달산등구

 

아름답게 핀 개나리꽃

 

수줍은 동백꽃

 

시민종각

 

 

 

 

 

 

접사로 본 개나리꽃

 

 

 

 

노적봉의 웅장한 모습

 

 

 

 

 

 

장군목

 

노적봉 다산목

 

 

 

노적봉 큰바위 얼굴

 

이순신장군 동상

 

 

 

개나리꽃을 감상하며 걷는 관광객들의 모습

 

벚꽃도 피어 가고..

 

 

 

 

 

 

마당바위에서 본 일등바위

 

 

마당바위에서 본 고하도 용머리

 

 

마당바위에서 본 목포 시가지

 

부동명왕 조각

 

모든 사람들이 유달산을 찾지만 부동명왕이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부동명왕을 소개해 드리려고한다.

부동명왕은 1920년대 말 일본인들이 일본 불교의 부흥을 꾀하기 위하여

목포 유달산에 88개의 홍법대사상과 부동명왕상을 만들었는데,

현재 유달산 일등바위 암벽에 조각되어 있는 암각상들만 남아 있다고 한다.

 

 

부동명왕 옆에 새겨진 유달산산신사

 

일제시대 홍법대사상과 부동명왕상 사이 암벽에는 유달산신사(儒達山神祠)라고 새겨 놓았는데, 

'사'는 지워지고, '유달산신'만 남아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측면으로 본 부동명왕

 

부동명왕(不動明王)은 불교 진언종에서 받드는 오대존명왕의 하나로 부동여래사자(不動如來使者)라고도 한다.

오대존명왕은 곧 중앙의 부동, 동방의 항남세, 남방의 군다리, 서방의 대위덕, 북방의 금강야차가 그것이다.

그 가운데 부동명왕은 중앙에 있으며 대일여래가 일체의 악마를 항복시키려고 변화하여 분노한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 한다.

원명은 아시알라라 하는데, 힌두교 시바신의 이명을 불교가 그대로 채택한 것으로 불교에서는 이 명왕에게 사자의 성격을 부여하였다.

후에는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사자로써 번뇌의 악마를 응징하고 밀교 수행자들을 보호하는 왕으로 간주되었다.

 

오른손에 검을 쥐고 왼손에는 삭(索)을 쥐었으며, 부릅뜬 눈과 뾰족한 어금니에 윗입술을 깨문 무서운 분노신(忿恕身)을 하고 있다.

맹염(猛炎)이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은 악마를 박멸하는 위력을 나타낸 것이고, 동자형(童子形)의 몸 모양은 여래의 동복(童僕)이 되어 밀교 수행자들의 봉사자가 되려는 서원(誓願)에 따른 것이다.

조상(造像)은 히말라야 산록을 뛰어다니는 목동을 모델로 했는데, 불상 중에서 가장 인도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현재 명왕부(明王部)의 대표격으로서 7세기 후반 <大日經>이 성립되자 밀교 오대명왕의 주존(主尊)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홍법대사(弘法大師) 마애불

 

774년 시코쿠 사누키국(讚岐國)에서 태어났으며, 일본 불교 진언종(眞言宗)의 창시자로, 본명은 구카이(空海)이다.

그의 집안은 사누키국을 세운 유력한 가문이고 어머니는 헤이안시대 고승을 배출한 집안출신이었다.

18세 때 교토(京都)의 대학에 입학하여 오카다 등에게 <상서(尙書)><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등 유교 경전과 중국사서를 배웠다.

 

어느날 한 승려를 만나 ‘허공장구문지법(虛空藏求聞持法)’을 백만 번 외면 모든 가르침의 참뜻을 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출가하였다.

20세 때 곤조(勤操)에게 출가하였고, 24세 때는 <삼교지귀(三敎指歸)>라는 책을 저술하여 불교의 우수성을 강조하였다.

구카이가 수행한 불교는 율령국가 체제를 수립해간 불교가 아니라 스스로 깨달음을 통해 높은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30세 무렵에는 당나라로 건너가 청룡사의 혜과(惠果)를 만난 구카이는 학문적 재능이 뛰어났으며 최고의 전법자가 되었다.

혜과는 그에게 관정(灌頂)을 베풀고 요가 등을 전수한 뒤 밀교를 일본에 전하라는 당부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구카이는 귀국하기 전 여러 가지 서적과 불상, 만다라, 법구, 혜과의 유물 등 밀교와 관련된 자료를 많이 모았다.

 

이들 자료는 뒤에 사이초(最澄)와 긴밀한 관계를 갖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일본 천황의 신임을 얻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귀국 후 밀교 경전을 널리 전파하고 이른바 동밀(東密) 일파를 개창하였으며 고야산[高野山]에 공고부사[金剛峯寺]를 세우고 교토의 도사(東寺) 건립에 참여하는 등 진언종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다가 62세의 나이로 공고부사에서 입적하였다.

그가 일으킨 진언종은 밀교를 받아들여 정신과 육체의 합일을 강조하고 현세에서의 이익을 인정하여 당시 귀족들의 환영을 받았다.

 

 

 

 

아름다운 생강나무

 

유달산 정상인 일등바위

 

오랜 옛날 사람이 죽으면 이 일등바위(율동바위)에서 심판을 받은 뒤,

이등바위(이동바위)로 옮겨져 대기하고 있다가,

극락세계로 가는 영혼은 3마리의 학(삼학도)이나 고하도 용머리의 용을 타고가고,

용궁으로 가는 영혼은 영달산(유달산)에서 조금 떨어진 거북섬(목포와 압해도 사이에 있는 섬)에 있는 거북이 등에 실려 용궁으로 간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유달산 정상에서 인증샷

 

영산기맥의 산줄기가 무안반도 남단에 이르러 마지막 용솟음을 한 유달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영산기맥의 맨 마지막 봉우리이자 다도해로 이어지는 서남단의 땅끝인 산이다.

 

 

 

유달산 정상에서 바라본 고하도 용머리

 

일등바위와 작별을 고하고 이등바위로 출발

 

유달산에서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 이등바위

 

 

유달산 신왕대성전터

 

 

얼굴바위에서 바라본 다도해

 

얼굴바위

 

이등바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옛날 보리타작을 했다고해서 붙여진 이름 보리마당

 

얼굴바위를 지나면 너른 공터의 보리를 털어 말리던 곳, 보리마당.

오래전 목포 인근의 섬사람들은 보리나 벼 등을 수확한 뒤 목선에 실어 목포까지 날라야 했다.

섬엔 변변한 도정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보리는 정미소 가기 전, 그리고 도정을 마친 뒤 각각 볕에 말려야 한다..

섬 주민들이 정미소가 있던 도심 외곽에 며칠씩 머물다 보니 자연스레 이들을 상대로 국밥집과 여관, 시장 등도 생겨났다..

지금은 명맥만 남은 백반거리, 팥죽거리 등도 따지고 보면 이때부터 조성됐던 셈이다.

흔히 다순구미와 보리마당이 같은 지역인 것처럼 표현되곤 하지만, 사실 별개의 마을이다.

아리랑고개(옛 말태기재)를 경계로 윗자락은 다순구미, 아래쪽은 보리마당이다.

 

 

오늘따라 소요정에는 막걸리를 먹는 손님으로 북적북적

 

1966년에 세워진 소요정은 평지처럼 산책하기 좋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등산객들에게는 다도해 전망대라고 불린다.

맑고 잔잔한 바닷물과 점점이 흩어진 푸른 섬들로 유명한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이곳에서 목포해양대 쪽을 바라다보면 고하도와 압해도를 위시한 조그마한 섬들이 펼쳐져 있다.

다도해 멀리 저녁해가 유달산너머로 빠져들 때면 저녁 노을은 갖가지 아름다움을 연출해 낸다.

그리고 난 공원이 있는 우측으로 목포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이등바위가 있는 쪽으로는 목포의 북항이 바라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