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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트레킹&하이킹&여행

칼바위로 유명한 보성 오봉산



▣ 일시 : 2018. 02. 06(화)

▣ 날씨 : 0하 7도의 매우 추운날씨

▣ 장소 : 보성 오봉산(320m)

▣ 동행 : 목포다솜산악회

▣ 코스 : 득량남초등학교~조새바위~칼바위~오봉산~용추폭포~해평저수지

▣ 거리 : 9.49km(Gps 측정)

▣ 시간 : 4시간 17분 소요(휴식 및 점심시간 45분 포함)

▣ 후기

목포에는 요 며칠새 계속 많은 눈이 내리고 있다. 따라서 보성에도 많은 눈이 내렸겠지 하며 중무장을 하고 갔는데 이게 왼일인지 눈이 하나도 안왔다. 오늘도 눈꽃 산행을 한다는 마음에 기분이 들떠 있었는데 좋다 만게다.


그러나 날씨는 추워 손이 시려 못 견딜정도였다. 따라서 칼바위 동굴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봉산 정상을 거쳐 용추폭포로 하산을 하였다. 마음같아서는 종주를 하고 싶었지만 단체이다보니 다음을 기약해야했다.


산행이 너무 빨리 끝나다보니 바로 집으로 온다는게 이상해서 득량역으로 가서 추억의 거리를 구경하고 포차에서 막걸리도 한잔하고 왔다. 비록 눈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득량만을 바라보며 걷는 재미는 쏠쏠했다고 말하고 싶다.


▣ 산행지도 및 Gps 트랙




▣ 산행사진

단체사진을 찍고



득량남초교에서 산행시작


득량남초교에서 칼바위까지는 3.8km


열심히 칼바위를 향해 오르는 모습





득량만


득량만(得粮灣)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수군이 군량을 얻었다고 해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바다로 뾰족하게 돌출된 육지를 곶(串)이라고 하는데, 이게 규모가 크면 반도가 된다. 고흥은 남해안에 대표적인 복주머니 모양의 반도이다. 만(灣)은 바다가 육지쪽으로 들어와 있는 형태로써 득량만은 고흥반도를 기준으로 북서쪽에 있다.

득량만 입구는 남서쪽으로 열려져 있고 보성만 쪽으로 들어가며 연결되어 있다. 연안이 고흥군, 보성군, 장흥군 등과 둘러싸여 있다. 맞닿은 해안선과 경계한 연안은 일부 방조제가 축조되어 있지만, 타 지역에 비해서 드넓은 간석지가 펼쳐져 있다. 연안에서는 낙지·장어 등이 많이 잡히며, 김·미역·굴·피조개·키조개·바지락 등의 양식업이 활발하다.

득량만 해역의 수질은 1~2등급 수준으로 인근 바다에 비해 전반적으로 우수하고, 퇴적물에 의한 유기오염지표 또한 매우 양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장흥군은 전국 최초로 산(酸)을 사용하지 않는 ‘무산김’ 양식을 시작했고,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관리하여 바다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평과를 얻어냈다. 마침내 2017년 9월에는 전국 최초 ‘청정해역 갯벌생태산업특구’로 지정되기도 했다.


해평저수지는 꽁꽁 얼었다.





조새바위


득량면 오봉산에 있는 바위로 돌이나 바위에 붙어 자라는 굴을 따고 그 안의 속을 긁어내는 데 T는 연장인 조새처럼 생겼다고 하여 조새바위라고 불린다. 일명 황새바우라고도 한다.






돌탑


산길 곳곳에 형성된 너덜지대엔 많은 돌들이 쌓여 있다. 이 돌들은 그 사연을 알고나 있을까. 다른 산의 너덜과는 모양새가 다르게 모두가 널찍하고 반듯반듯하다. 한때 가난한 시절에 이곳 주민들은 이 돌을 구들장으로 팔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질 좋은 구들은 마을의 자랑이었지만 세월무상일까. 지금 그 돌들은 돌탑이 되어 오봉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칼바위 중앙에 새겨진 마애불


통일신라 때 고승 원효대사가 수도터로 삼고 불도를 닦았다는 전설의 기암 칼바위


오봉산의 으뜸인 칼바위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기기묘묘하다. 손등을 위로 세우고 손가락들을 모아서 45도 각도로 굽힌 모양 같기도 하고 한 마리 고슴도치가 고개를 바짝 쳐든 모습 같기도 하다.


칼바위는 통일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수도터로 삼고 도를 닦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하는 곳이다. 칼바위 부근에는 여러 바위 봉우리들과 굴이 있다. 칼바위 아래 있는 굴은 사방을 높은 바위벽이 둘러싼 공간으로 50여 명이 들어설 수 있는 큰 규모다.


임진왜란 때 인근 사람들이 이곳에 피난 와 화를 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칼바위에는 희미한 화상이 새겨져 있어 이를 둘러싼 설이 분분하다.


원효대사가 이곳을 떠나면서 새긴 불상이란 말도 있고 조선 태조의 화상이라 전해지기도 한다. 태조가 등극하기 전 왜구를 물리치러 이곳에 머물며 성을 쌓고 자신의 화상을 바위에 새겼다는 것. 하지만 전남대박물관이 펴낸 <보성군문화유적학술조사>에 따르면 머리 위 큼직한 육계가 있고 이마에 백호가 있으며 수인은 오른손이 가슴에 붙여져 있어 여래상이라고 한다.


조성 시기는 고려 전기. 이 마애불은 보통 때는 잘 보이지 않으나 아침 햇살이 비출 때만은 윤곽이 잘 드러난다고 한다. 오늘은 그리 좋지 않은 흐린 날씨였지만 자세히 올려다보니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봉산으로 향하면서 바라 본 칼바위


지나온 우측 봉우리





멋있는 돌탑


오봉산을 향하여 전진


오봉산 정상


봉우리가 다섯 개 모여 있는 오봉산은 산 아래 다가설 때까지도 그리 독특하지 못하다. 하지만 파고들면 점입가경, 신비스럽기 그지없다. 설악산 천불동계곡에 들어서는 듯 가야동 계곡의 협곡을 보는 듯하고 , 산등성에 솟은 암봉과 암벽은 날카로운 칼날을 세워놓고 병풍을 펼쳐놓은 듯하다. 작은 산이 어찌 이토록 심오한 자연미를 펼칠 수 있을까 감탄할 정도다.


오봉산은 한민족의 아픔이 서려 있는 산이다. 1949년 10월초 빨치산 보성지구부대는 보성경찰서를 습격하려다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경찰의 매복에 걸려 격전 끝에 100여 명이 군경저지선을 뚫고 오봉산으로 도망쳤으나 뒤쫓아온 군인, 경찰들에게 다시 발각돼 격렬한 전투를 벌였고 결국 빨치산 잔당들은 3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뒤에서야 오봉산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전해진다.


산길 곳곳에 형성된 너덜지대에 쌓여 있는 돌들은 여느 너덜과 다른데 모두가 널찍하고 반듯반듯하여 한때 이곳 주민들은 이 구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할 만큼 질 좋은 구들이 많이 나오던 곳이다. 산행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칼바위쪽으로 뻗은 오봉산 주릉이다. 매끈하면서도 힘차게 뻗은 능선과 그 끝에 날카롭게 치솟은 바위는 강함과 부드러움의 조화를 보여준다.


칼바위는 통일신라 때 고승 원효대사가 수도터로 삼고 불도를 닦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기암이기도 하다. 원효는 용추폭포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칼바위에 올라 수도를 닦았다 한다. 절벽, 곳곳에 놓여진 돌탑들, 그리고 저 멀리 내다보이는 넓은 바다 등이 한데 어우러져 오봉산의 산행을 즐겁게 한다.







오봉산 정상에서 인증샷








덕석을 깔아놓은 등산로


마지막 하산 길





땡땡 언 용추폭포






둘이서 정답게...



해평저수지



산행 종료하고 득량역으로 이동





득량역 추억의 거리


득량역은 1930년, 경전선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했다. 경전선은 경남 밀양 삼랑진역에서 광주 송정역 사이를 잇는 대한민국 남해안 횡단열차다. 개통 당시에는 화물 등을 옮겼으나 인구감소, 산업의 발달로 점점 역할이 약해져 지금은 여객수송과 득량~보성역 퇴행열차 입환을 하고 있다.


입환은 차량의 분리, 결합, 선로교체 등의 작업을 뜻한다. S-트레인과 무궁화호가 하루 10번 왕복하는 간이역으로 매표도 가능하다. 70~80년대 읍내의 모습을 재현한 득량역 추억의 거리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진한 열차역 문화디자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1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했다.


반세기 넘게 영업중인 이발소, 다양한 차를 맛볼 수 있는 역전다방, 오래된 방앗간 그리고 득량초등학교와 만화방, 오락실 등이 진한 7080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득량역





열차 운행 중





포차 벽에 써놓은 글씨들






포차에서 막거리로 하산주를 하고 오늘의 산행일정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