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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얘기

무안 승달산(목대~깃대봉~하루재)

 



▣ 언제 : 2008. 6. 22(일)
▣ 어디로 : 무안 승달산 332.5m

▣ 누구랑 : 나 홀로

▣ 산행코스 : 목대 운동장~ 대흥동 ~ 노승봉 ~ 승달산 ~ 하루재 <3시간 소요>
▣ 날씨 : 맑고 약한 황사
▣ 산행소감

오늘 승달산을 혼자 산행하면서 정상을 찍고 하루재에서 막걸리나 한잔하고 깃봉 쪽으로 돌려고 하였으나 고향인 무안 사람들을 만나 주막에서 술을 많이 마신 관계로 주막집 주인 차를 빌려 타고 목우암으로 해서 목대까지 차를 타고 오고 말았다.


▣ 산행지도


▣ 산행사진  

 

어제 종일 비가 와서 산에 가지를 못하고 일요일인 오늘은 산에 가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그 사람 왈 금방 비가 또 올것 같다 산에 가지 말자....집에서 푹 쉬자 한다...  

그럼 나 혼자라도 다녀 올께 하고 나선것이 고작 승달산으로 향했다.

햇볏은 쪼이지 않았으나 먹구름은 하늘을 뒤 덮은 상태였어도 과감히 차를 목대에다 주차해 놓고 산을 올랐다.

땀은 주룩 주룩 쏟아지고 홀로 걷는 그 길이 힘이 들고 지치기도 했다. 

그러나 가끔씩 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승달산 정상을 향해서 달렸다.

오고 가는 중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끝내는 막걸리 주막집에서 짐을 풀고 고향 사람들끼리 한잔의 술잔을 기울리니 이 보다 더 좋은 세상은 없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사진 찍기를 너무 좋아해서 오늘도 승달산에서 오늘의 장면을 담아 보았다.

다 같이 감상하면서 좋은 세상 늘 함께 했으면 좋겠다. 산을 올르기 전 저수지는 화순 세랑지 저수지보다 더 멋진 풍경을 주는것 같아 몇장 담아 올려 본다.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 성동리 안골에 소재하고 있는 고인돌(支石墓)인데, 서해안고속도로 공사로 인하여 1995년 목포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성동리 고인돌은 폭 100~200m 정도의 조그만 골짜기를 따라 남~북으로 열을 지어 4기(가군), 9기(나군), 3기(다군)가 군집을 이루면서 분포하고 있었다. 다군의 1기를 제외한 15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다.

 

가군 고인돌은 판돌(板石) 2매가 장벽을 이룬 소위 탁자식(北方式)고인돌과 자연석(自然石) 4매가 고인 전형적인 기반식(南方式)고인돌, 판돌과 자연석이 받치는 탁자식·기반식 혼합형(混合型)고인돌이 있다. 이 고인돌들은 세 유형의 형식이 혼재하고 있어 적어도 이 지역에서는 같은 시기에 공존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출토유물은 없다.

 

나군 고인돌은 9기가 골짜기 방향으로 2열로 배치되어 있었다. 하부의 무덤칸은 두께 20~30㎝의 판돌을 이용한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1호의 경우 덮개돌(上石)의 길이, 두께가 5.24×1.02m로 대형인데, 무덤칸은 대형 판돌 3매를 이용하여 ‘ㄷ’자형으로 세워 지상형 무덤칸을 만들었다. 무덤칸의 크기는 길이, 너비, 높이가 2.3×1.6×0.98m로 탁자식고인돌이다. 이 고인돌군 무덤칸들은 규모가 작아지고, 높이가 낮아지며, 판돌 두께가 얇아지는, 그리고 무덤칸이 지하화되는 다양한 무덤칸이 존재한다. 유물은 주변에서 돌화살촉(石鏃) 1점과 1호 무덤칸 안에서 적갈색연질토기편이 출토되었다.

 

다군 고인돌은 3기 중 2기만 조사되었는데, 모두 고임돌(支石) 6개와 7개가 고인 기반식고인돌이다. 길이 4.0~6.0m의 대형 덮개돌 아래를 돌아가면서 고임돌이 고이고 있으며, 고임돌 안과 밖에 판돌편을 1겹 깐 적석, 그리고 길이, 너비가 2.0×1.0~1.6m의 큰 무덤칸 등이 특징적이다. 특히 2호 고인돌은 무덤칸과 고임돌 주위에 판돌편을 이용하여 직경 4.0~4.5m의 원형 적석을 아주 정교하게 축조하였다. 유물은 1호 무덤칸 상면에서 출토된 민무늬토기 저부 1점뿐이다.

 

이상에서 본 무안 성동리 고인돌은 군집에 따라 각각 다른 형식들이 존재하고 있는 점에서 형식 상호간의 편년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이외에 이 고인돌군은 형식간의 공존(가군), 지상 무덤칸과 지하 무덤칸형의 공존(나군), 정교한 원형 적석(다군), 그리고 일반적인 고인돌의 무덤칸보다 규모가 큰 점, 출토 유물이 매우 빈약한 점이 특징이다.  

 

  

 

전라남도 무안군 일로면 월암리 회인동 360번지로 평지에 4기의 고인돌(支石墓)과 움무덤(土壙墓)이 있다. 일로면은 영산강을 따라 그 연안에 위치한 평야지대이며 무안군의 동남부에 해당한다. 월암리 고인돌은 밭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데, 아파트 건설로 인하여 1991년에 목포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다.

 

1호 고인돌은 장축이 남~북 방향으로 놓여 있으며, 2호는 남북에 가까운 남서~북동 방향이고 3·4호는 파괴되어 알 수 없다. 무덤칸은 판돌(板石)을 세워 만든 돌널형(石棺型) 무덤칸과 무덤칸을 만들지 않고 회백색 점토를 깔고 판돌을 덮은 형식이 있다. 유물은 유경식돌화살촉(有莖式石鏃) 1점, 숫돌(砥石) 2점, 굽은옥(曲玉) 1점이 있다.

 

1호 고인돌에서는 바닥에 청동편과 굽은옥이 출토되었다. 특히 굽은옥은 반결형으로 세형동검(細形銅劍) 초기유적에서 출토되는 것들과 유사한데, 형태상으로는 부여 송국리(松菊里) 돌널무덤 출토품과, 머리부분에 구멍이 2개 뚫린 것은 함평 초포리(草浦里) 돌무지나무널무덤(積石木棺墓) 출토품과 유사성이 있다.

 

1호 고인돌을 파괴하고 조성된 움무덤은 바닥에 길이, 너비, 두께가 30×26×4㎝의 판돌이 1매 놓여있고, 그 북쪽에도 1매의 판돌이 더 있는 것으로 보아 2매의 판돌은 주검받침대(屍床臺)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바닥석 위에서 쇠낫(鐵鎌), 쇠도끼(鐵斧)가 각각 1점씩 발견되었고 북쪽부분에서는 구슬류가 출토되었다.

 

바닥만 남아 있어서 무덤구덩이의 크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길이, 너비가 2.3×0.86m이고 장축방향은 남동-북서 방향이다. 고인돌의 축조 연대는 굽은옥의 연대를 고려해 B.C. 3세기 말-2세기 초경으로 추정하고 움무덤의 축조연대는 A.D. 3세기경이다.

승달산을 등산하기전에 들르는 코스가 목대다.

오늘은 여느날처럼이 아닌 반대변으로 오르기로 하고 체육관앞에 차를 주차하고 오르면서 목포대학교의 아름다운 모습을 잠깐 담아 보았다.

예전에는 목대가 조그만 했는데 해가 갈수록 건물도 많이 생기고 깨 규모가 커 졌다. 

이 지방의 명실상부한 국립대학으로 나날이 발전하기를 바란다.

 

  

  

  

  

 

 

  

  

 승달산을 오르면서 본 목대옆 저수지

 

  

  

 장부다리 저수지

 

  

 

  

 

 

 산불감시초소

 

  

 

 

  

  

 

 승달산 정상 깃대봉

 

 














 

 월선리저수지

 

  감돈리저수지

  

  

  

  

  

  

  

  

  

  

  


  

  

  

  

  

  

  

  

  

  

  

목우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