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산을 알고부터 소박한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남들은 꿈을 말할때 재산이나 권력같은 욕심을 말하지만 나는 눈꽃 만발한 어느 겨울산정에 올라 운해 두둥실 떠있는 곳에서 빨간 햇님 솟구치는 맑은 아침을 맞이하고 싶은 그런 소박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맞이하는 일출 기분은 어떠할까...
정말로 하얀눈이 빨갛게 물들어 불타오르는 듯한 뜨거움이 느껴질까...
이번 겨울엔 꼭 한번 볼 수 있을까?
그래서 눈이 펑펑 내린다는 설악산과 한라산을 매일같이 그리게 되었고 시간이 나면 월출산이라도 다녀오고 싶은맘 간절하였는데...
허무한 꿈으로 변해 버렸고 눈이 온지도 며칠 지났고 남부지방에는 눈도 별로 오지 않았는데 꿩 대신 닭이라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일출은 아니더라도 아름다운 눈꽃과 상고대를 보려고 설레는 마음으로 무등산국립공원을 찾았습니다.
꿈을 찾아간 무등산 입석대, 서석대!
그곳에는 내가 그토록 그리고 소망하던 꿈이 있었습니다.
환상과도 같았던 꿈
마침내 난 꿈을 찾았고
여한없는 기쁨과 행복을 맛 보았습니다.
찾아 떠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꿈
꿈은 바로 우리들 곁에서 우리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산행일시 : 2013. 12. 14(토)
▣ 날 씨 : 맑았으나 박무
▣ 산행장소 : 무등산(1,186.8m)
▣ 행정구역 :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화순군 이서면과의 경계에 있는 산
▣ 참여인원 : 토요산악회 따라서
▣ 산행코스 : 증심사관리사무소~토끼등~동화사터~중봉~장불재(점심식사)~입석대~서석대~용추삼거리~중머리재~당산나무~증심사~증심교~증심사관리사무소
▣ 산행거리 : 10.2km(Gps 측정)
▣ 소요시간 : 7시간(점심 및 휴식시간 포함)
▣ 이동수단 : 산악회 버스
▣ 소요비용 : 25,000원(교통비, 목욕비)
▣ 산행사진

무등산(無等山)의 유래
광주의 옛 이름을 무진주(武珍州) 또는 무주(武州)라 해서 이 고을의 진산인 무등산도 일찍이 무진악(武珍岳) 또는 무악(武岳)으로 부른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광주는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다가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였는데 이때 백제를 3주로 나누어 그 하나를 무진주(武珍州, 一云 奴只)라 하였으며 광주가 백제에 속한 시기는 4세기 근초고왕(近肖古王, 346~375)때부터인 것으로 보고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전국을 9주로 나누어 도독을 배치하면서도 계속 무진주와 완산주(지금의 全州)는 그대로 불렀다. 그런데 757년(경덕왕 16년)12월에 경덕왕이 고을 이름을 중국식인 외자로 고치면서 무진주는 무주로 완산주는 완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무주가 광주(光州)로 바뀌게 된 것은 940년(고려 태조 23년)3월에 여러 주(州), 부(府), 군(郡), 현(縣)의 명칭을 바꾸었을 때부터이다. 그 뒤에도 1362년(고려 공민왕 11년)부터 1773년까지 무진주(茂珍州)라 하였는데 ‘武’를 피하고 ‘茂’로 바꾼 것은 고려 혜종(943~945)의 이름에 ‘武’자가 있어 이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조선시대에도 1430년(세종12년)부터 1451년(문종1년)까지 다시 무진군(武珍郡)이라 불렀던 때가 있었다.
백제시대에 무진 혹은 노지라 이름을 쓰게 된 것은 원래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이란 옛 지명에서 연유한 것인데 未冬은 습지를 뜻하는 우리 옛 말인 물들, 물둑(水場), 무들, 무돌을 차자표기한 것이다. 즉 未冬이라고 적고 무돌이라 발음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백제시대에 와서 무돌의 ‘무’는 한자음의 ‘武’로 표기하고 무돌의 ‘돌’은 뜻으로 볼 때‘珍’이 되므로 무돌을 무진(武珍)이라 하고 광주를 무진주(武珍州)라 했으며 무등산을 무진악(武珍岳)이라 한 것이다.
‘무돌’은 또 ‘무지개를 뿜는 돌’이란 뜻을 지닌 순우리말의 조어(造語)로 보기도 한다. 옛사람들은 지금보다도 낱말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썼다. 죽고 사는 것을 ‘죽사리’라고 했는데, 그것은 동사 ‘죽살다’에서 온 것이다. 갈대밭으로 이루어진 산을 ‘갈뫼’라고 했다. 따라서 조어 ‘무돌’의 무등산은 무지개처럼 곱고 아름다운 돌산이란 뜻도 된다. 무등산을 서석산(瑞石山)이라고 불렀던 연유도 ‘무돌’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겨진다. 옛사람들은 돌을 무척 신성시했고 신앙의 대상물로 섬겼던 것으로 미루어 서석산이란 글자 그대로 상서로운 돌산이란 뜻이라 하겠다.
무등산은 대체로 육산(肉山 또는 土山)으로 되어 있으나. 그 특색은 오히려 웅장한 암석미에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서석대, 입석대, 규봉 등이다. 정상을 중심으로 하여 서쪽에 서석대가, 남쪽에는 입석대가 위치하고 있는데, 특히 서석대는 마치 수정 병풍을 둘러친 것처럼 아름다운 직절상(直截狀)의 석조(石條)로 이루어진 총석(叢石)의 집단이며 이곳을 ‘서석의 수정병풍’ 이라고도 한다.1)
무등산을 서석산이라 부른 것은 고려때의 일로 추측된다. 무진주를 광주로 고쳐 부른 것은 940년(태조 23년)인데, [고려사 지리지]는 ‘무등산’이라 적고 ‘혹은 무진악이라고 하고 혹은 서석산이라고 한다(一云 武珍岳, 一云 瑞石山)’고 그 명칭의 유래를 기록하고 있어 서석산이란 이름이 이때부터 무등산의 별칭 또는 애칭으로 함께 불려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은 [고려사]의 기록을 그대로 인용, ‘이 산 서쪽 양지 바른 언덕에 돌기둥 수십개가 즐비하게 서 있는데 높이가 가히 백척이나 된다. 그래서 산 이름을 서석이라 했다(山西陽崖 數十櫛立 高可百尺 山名瑞石 以此)’ 라며 서석의 유래를 밝히고 있다.
송강 정철은 성산별곡에서 ‘천변(天邊)에 뜨는 구름 서석을 집을 삼아’라 하였고, 제봉 고경명도[유서석록(遊瑞石錄)]을 남겨 무등산을 예찬하고 있어 서석산은 조선시대의 문인들 사이에서도 즐겨 쓰였던 이름임을 알수있으며 현재 까지도 무등산의 별칭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등산에는 현재 우리가 서석이라 부르는 서석대 말고도 입석대, 규봉 , 그리고 정상 3봉을 비롯한 의상봉, 새인봉, 중봉 등 직립형 돌무더기가 곳곳에 흩어져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돌무더기를 우리 조상들은 ‘선돌’ 또는 ‘신돌’ 이라 불렀던 것이니 뜻을 취하면 ‘立’이 되고 음을 취하면 ‘瑞’가 되었던 것이다. 2)
부정(不淨)을 피하고 성지를 예찬하던 고대의 풍습은 이처럼 신체(身體)에 비길 수 있는 천연의 석경(石景)을 상서롭고 신성한 뜻으로 받아들여 ‘서(瑞)’로 대하였던 것이니, 무등산의 돌 경관은 어느것이나 서석이요 입석이지 따로 구분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서석의 절경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무등산을 서석산이라 이름하였던 것은 과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광주의 옛 어른들은 흔히 무등산을 ‘무당산’ 또는 ‘무덤산’이라고 불렀다. 그중에서도 무당산이라 부르는데 반드시 어떠한 연유가 있었을 것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무당골’ 이라 부르던 골짜기가 증심사 뒤쪽에 있었고 깃발을 나부끼는 무당의 움막이 듬성듬성 서 있었다. 곳곳에서 무당들의 내림굿이 펼쳐지기도 했었다.
‘무당산’은 ‘무당’에서 불려진 것이며 또한 무등산의 신령스러운 기운과 영험함을 믿는 민중의 믿음을 따라 이 산을 ‘무당산’이라 불렀음직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도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기 전에 있었던 원시종교 속에서 싹텄던 ‘당산’의 신앙이 곧 무등산을 ‘큰당산’으로 삼게 했고, 그것을 ‘무당산’이라 불렀을 것이다.1) 이렇게 당산을 신성시했던 시절에 무등산을 무당산으로 불렀던 이유는 곧 이 산을 신산(神山)으로 보았던 옛사람들의 토속신앙에서 연유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무등산은 동서남북 어디에서 보나 형상이 비슷하고 뒷면, 즉 등성이에 변화가 없다. 홑산으로 이루어진 그 모습이 마치 무덤처럼 둥글넓적하게 생겼다고 하여 속칙 ‘무덤산’이라 했을 법하고 또 희로애락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늘 덤덤하고 무덤덤한 심성을 상징하는 산이라 해서 붙여진 속칭일수도 있다.
그러나 육당(六堂)은 부정을 몹시 싫어하는 우리나라 풍속으로 봐서 이렇게 큼직한 신역(神域)에 “무덤산”이라는 흉측한 명칭을 썼을 것 같지 않다면서 ‘무당’이 와전된 것에 불과할 것1)이라고 했으며, 노산도 예부터 이고을 사람들이 무등산에 무덤만 써도 부정탄다고 여기며 신성시했던 점2)을 들어 ‘무등산’의 와전3)으로 보고 있다.
무정산은 조선왕조를 창건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 1335~1408)가 왕명에 불복한 무정한 산이라 지칭한데서 연유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 여러 명산대천에 왕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무등산 산신만은 그 소원을 거절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실제로 그는 나라를 세운 뒤에도 국내 명산의 산신들에게 제사를 올려 왕업이 수백대에 이르도록 이어지를 빌었고, 또 자기 손에 죽은 고려말 명신(名臣)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자주 산신에게 빌었다고 한다.
특히 나라에 가뭄이 계속되자 왕명으로 남쪽의 명산 무등산에 기우제를 지내게 했으나 무등산신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비가 내리지 않았으므로 왕명에 불복한 무등산 산신을 멀리 지리산으로 귀양보내고 이 산을 무정한 산이라 하여 무정산(無情山)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동국여지승람]에 ‘無等山神祠 新羅爲小祀 高麗致國祭本朝春秋令 本邑致祭’라 적어 고려 떄까지는 나라의 제사를 모시다가 조선조에 와서는 산신의 격을 낮추어 고을제(邑祭)로 지내게 한 사실을 두고 이러한 전설이 전해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무정산’ 역시 무등산에서 와전된 말일 것이다 생각된다.
무등산이란 명칭은 서석산(瑞石山)과 함께 고려 때부터 부른 이름으로 ‘무돌’, ‘무진’이라 했던 것이 무등산으로 바뀐 것이다. 무등산의 어원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이 있는데,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무등산의 ‘무등’은 앞서 적은 바와 같이 ‘무돌’의 이두음인데, 이 ‘무돌’에는 옛 농경사회의 보편적 지명인 ‘물둑(水堤)’이라는 뜻과 순수 우리 옛말의 조어인 ‘무지개를 뿜는 돌’이라는 뜻에서 연유했다는 설이 있겠으나 이미 ‘무당산’ 대목에서 말한 대로 ‘당산’과 비슷한 음을 따서 한자로 나타냈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노산은 이 산이 불교적 영장(靈場)이 된 뒤에 불교적인 가치를 설명한 이름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불교사전(동국역경원 간)에 의하면 ‘無有等等’은 부처님네는 세간의 모든 중생과 같지 않으므로 무등(無等)한 것이요, ‘無等等’은 부처님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어서 견줄이가 없다는 뜻이라 하니 결국 무등산은 불교의 이 말을 빌려다 이름으로 삼아 불교적 가치를 더욱 높인 것이라고 하겠다.
과연 이 주장에 걸맞게 무등산은 불교와 인연이 적지않다. 곳곳에 수많은 사찰과 고승들의 전설이 서려 있고, 산의 경관이 좋은 곳마다 불교적 명칭들이 남아있다. 지왕봉을 비로봉, 인왕봉을 반야봉이라 부르기도 하며, 삼존석(觀音, 如來, 彌勒)이나 의상봉, 윤필봉, 규보의 법화, 설법, 능엄 등 여러 대(臺)의 이름에서도 이 사실을 엿볼 수 있다.

토끼등

토끼등쉼터 소리정

토끼등에서 올려다 본 모습




동화사터 샘







중봉











장불재에서 점심식사




무등산 주상절리대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중생대 백악기에 발생한 화산활동의 산물로써 용암이 냉각 ∙ 수축하면서 형성되었으며, 오랜세월 풍화에의해 기둥모양 또는 병풍모양을 하고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주상절리대는 입석대와 서석대 그리고 규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입석대와 서석대의 돌기둥 하나의 크기가 지금까지 남한에서 보고된 것 중 최대의 것으로 주목 받고 있다. 특히 주변의 수목 및 무등산과 어울려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2005년 12월 16일에 무등산주상절리대 10만 7,800㎡는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었다. 화산활동의 산물인 무등산주상절리대는 수직으로 솟아오른 굵은 돌기둥과 동서로 길게 발달하한 돌병풍 등이 빼어난 지질 경관을 이루고 있어 학술적·경관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등산도립공원측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주상절리대를 일반인에게 공개하기 위해 8개월동안의 공사를 거쳐 2008년 12월 서석대(1,100m)를 개방하였다. 개방된 등산로에 나무판을 깐 산책로를 만들었고, 산책로는 서석대에서 조금 떨어진 입석대(1,017m)까지 이어져있다.







입석대































서석대





비닐우속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
































중머리재








450년된 당산나무


증심사
무등산 최대의 사찰인 증심사는 신라시대의 고찰로 오백나한전·오층석탑·칠층석탑·석조보살입상·증심사철조비로사나불좌상(鐵造毘盧舍那佛坐像, 보물 제131호) 등을 소장하고 있다.





무등산 연가
- 국립공원 승격에 부쳐 -
후산 오승준
잔치 잔치 열렸네
하늘 잔치 열렸네
어머니 산 무등산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의 명산이 되었네
무등산
국립공원으로 승격되던 날!
빛고을 광주는
춤을 추었네
부둥켜 안고
기쁨의 춤 추었네
남도사람들은
노래 불렀네
손에 손잡고
행복의 노래 불렀네
광주의 정신
고향의 마음
오롯이 담고 있는
무등산이여!
영원하라
하늘의 별처럼
영원하라
민주인권평화로
영원하라
빛나거라
대지의 태양처럼
빛나거라
건강행복도시로
빛나거라
오, 무등이여!
오, 무등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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