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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트레킹&하이킹&여행

화순 화학산(곰치재~화학산~안성마을)

▣ 산행일시 : 2015. 1. 10(토)
▣ 기상상황 : 박무
▣ 산행장소 : 국사봉(499m), 깃대봉(448m), 노적봉(430m), 화학산(614m), 금성산(468m), 개천산(497m), 천태산(497m)
▣ 행정구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참여인원 : 토요산악회 9명
▣ 산행코스 : 곰치재~첫봉~안부옛고개터~임도~임도~벌목지대~봉(이정표)~백토재 전봉~백토재~헬기장~국사봉~깃대봉~좌 운곡마을 하산로~헬기장~노적봉(바람봉)~바람재~사거리~땅끝기맥 화학산분기점~이정표 봉~헬기장~이정표(청룡마을 입구 4.1km)~삼개봉(쓰러진 안테나)~헬기장~헬기장~화학산~좌측 성적골 하산로~좌측 동구바골 하산로~접팔재~이정표(능선삼거리 접팔재 0.4km)~금성산~다시 주능선-다시 주능선-헬기장 삼거리 이정표-헬기장(깃대봉)-동해다리, 개천산 삼거리 이정표-등봉재삼거리 이정표-등봉재 이정표-임도 이정표-쉼터-개천산 삼거리 이정표-개천산-개천사, 음지마을 안부 사거리-헬기장-천태산-다시 헬기장-큰고개-산소-느티나무쉼터-폭포삼거리 이정표-안성마을회관-버스정류장
▣ 산행거리 : 약 20km
▣ 소요시간 : 8시간(점심 및 휴식시간 포함)
▣ 산행후기
내일 낙남정맥 3구간을 가는 날이라 가볍게 산행을 할려고 했는데 장거리 산행이 되고 말았다.
곰치재에서 출발하여 호남정맥 구간인 국사봉과 깃대봉을 오르고 땅끝기맥 구간인 노적봉코스로 해서
화학산, 금성산, 개천산, 천태산을 종주하고 안성리로 하산을 하였다.

비교적 등산로는 좋았으나 땅끝기맥 구간은 등산로가 희미하고 가시나무들이 있어 애를 좀 먹었다.
화학산 정상에서의 조망이 그래도 최고였으며, 사방팔방으로 수많은 산들이 파도를 이루고 있었다.

▣ 산행지도

▣ 산행사진 및 후기

곰치재 주차장에서 체조

 

곰치재

 

웅치[250m]는 화순군의 최남단인 청풍면 이만리와 장흥군 장평면 우산리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곰치, 곰치재라고도 한다.

명칭유래를 보면『여지도서』에는 “남쪽으로 장흥부와의 경계에 있는 웅치에서 오는 길이 44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봉미산(鳳尾山)과 가지산(迦智山) 사이에 웅치가 묘사되어 있고, 『해동 지도』와 『1872년 지방도』에는 장흥부로 넘어가는 경계에 웅치가 기재되어 있다.

 

자연환경은 화순군 청풍면과 장흥군 장평면을 연결하는 지방도 839호선에 고갯길 웅치가 있다. 웅치에서 동남쪽 봉미산을 향하는 길 초입 벌목 지역에서는 장흥군의 산야가 먼 곳까지 조망되지만 봉미산[490m] 오름길 된비알은 수목이 빼곡하다.

 

웅치에서 바라보았을 때 장흥군 장평면과 화순군 청풍면의 군계선을 따라 북동진해 남쪽 장흥군으로 흘러내린 장평천·임천천은 보성강 물줄기를 따라 주암호에 갇혔다가, 곡성군 오곡면의 압록 유원지에서 섬진강과 합류하여 광양만으로 빠져들고, 북쪽의 화순군 쪽으로 흘러내린 청풍천·송정천 등은 지석천~영산강 물줄기를 따라 목포만으로 흘러든다.

 

현황은 웅치를 중심으로 북서쪽에 국사봉, 남동쪽에 봉미산이 펼쳐져 있다. 웅치를 따라 화순군 청풍면과 장흥군 장평면을 연결하는 지방도 839호선이 지나고 곰치 휴게소가 위치해 있다. 청풍면 이만리는 진전 마을과 강촌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웅치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호남정맥 구간

 

슬로시티 지도

 

호남정맥 등산로 안내도

 

국사봉

 

깃대봉

 

운곡마을 갈림길

 

바람재삼거리

 

땅끝기맥 분기점 노적봉(바람재)

이 비는 목포 노적봉산악회에서

세웠다고 한다. 수고하셨습니다.

 

바람재에서 시작한 땅끝기맥 구간은

잡풀과 가시덩굴이 있어 산행에 애를 먹었다.

 

땅끝기맥에서 벗어나서 화학산으로 진행

 

멋진 소나무

 

청용마을 갈림길

 

화학산 전방 2km지점에서 점심식사

 

점심식사 후 노래자랑

 

화학산

 

산세가 굽이치듯 유연하고 완급의 경사를 펼친 솜씨가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화학산은 험한 능선으로 이어진 산세와 장흥과 인접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동학혁명 당시에는 동학군이 주둔하기도 했으며, 동학농민전쟁 이후에도 의병전쟁, 6.25전쟁 등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화학산은 생각보다 지형이 험하지는 않다. 전형적인 육산으로 수종도 거의 잡목이다. 주능선에도 바위지대가 없이 유순하며 산세는 마치 거대한 공룡의 등줄기처럼 기다란 주능선이 남북으로 길 게 뻗어 있다. 눈요기 감이라 고는 시원한 나주호의 풍경과 암괴가 형성된 각수바위 정도다.

 

산행은 주로 원점회귀형으로 갔던 길을 되짚어 오거나 약간 떨어진 백운리로 하산하는 경우가 많다.주능선을 타고 바람재까지 산행이 가능하나 교통편은 불편하다.

 

화학산 정상석

 

화학산에는 고산철쭉이 유명

 

화학산 정상에서 바라 본 조망

사방팔방으로 산들이 굽이쳐 흐른다.

 

성적골

 

동구바골

 

접팔재

 

능선삼거리

 

금성산

 

496.2봉을 오르면서 바라본 화학산과 각수바위

 

496.2봉 정상

 

496.2봉 석축

 

등봉재로 내려가며 바라본 개천산

 

등봉재

 

개천산 암벽

 

개천산을 오르며 바라본 496.2봉과 화학산

 

개천산을 오르며 바라본 금성산에서 깃대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개천산

 

개천산[497.2m]은 천태산의 일부로 여겨지기도 하며, 산줄기의 북쪽 산봉을 천태산이라 부르고 그보다 남쪽에 있는 산봉을 개천산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뾰족하게 보이는 탓에 인근 마을에서는 문필봉(文筆峯) 혹은 필봉(筆峯)이라고도 부른다. 화순군 춘양면 가동리·도암면 등광리의 경계로서 분수계를 이룬다.

 

개천산의 명칭 유래는 통일 신라 말에 형성된 개천사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조선 지지 자료』에는 중조산(中條山)으로 나오며, 『여지도서』에는 능주목 서이면(西二面)에 개천사라는 지명만 나온다.

 

개천산은 천태산과 남북으로 마주하고 있어 전체 산줄기는 남북 방향으로 뻗으면서 화순군 춘양면, 도암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로 인해 물줄기는 동서 방향으로 분수되어 개천산의 동쪽 큰 골은 영산강의 큰 지류인 지석천 지류 중 하나인 춘양천의 발원지가 된다. 서쪽의 큰 골은 나주호로 유입되는 봉학천의 지류를 이룬다.

 

1982년 10월 15일 화순 천태산 비자나무 숲이 전라남도 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 8월 9일에는 천연기념물 제483호로 변경되었다. 11만 8,800㎡의 숲을 개천사에서 관리한다. 비자나무 숲은 과거 사찰 주변에 조성했던 비자나무가 확산되어 만들어진 숲으로 개천산과 천태산 개천사 주변에서 자생한다.

 

특히 개천사 북쪽의 비자나무 한 그루는 수령이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는 16m, 가슴 높이 둘레는 1.2m, 둘레가 3.5m에 달하며, 나무의 가지와 잎이 달려 있는 부분으로 원 몸통에서 나온 줄기인 수관의 폭은 18.4m에 이르는 노거수(老巨樹)로 보존 가치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된다.

 

정상에서 보면 서쪽으로 영산강의 4대 댐인 나주호가 보이고, 동쪽으로 이양 분지가 보이며 그 너머에 호남 정맥의 산줄기가 보인다. 북서 방향으로 유명한 천불 천탑의 운주사가 자리하고 있다. 가까운 도로로는 화순군 도암면을 지나는 지방도 818호선이 있다.

 

개천산에서 바라본 천태산

 

개천산에서 바라본 개천사

 

천태산 선바위

 

천태봉

 

천태산 아래에 자리잡은 개천사는 통일신라시대 헌덕왕 말기에 도의선사가 장흥 보림사를 창건하고 이어 개천사를 건립하였다고 전하는 유서깊은 사찰로 비자나무 숲이 유명하다.  

 

한때는 천불전으로 이름나 있어 산 이름이 천불산으로 불리운 적도 있었으며 정유재란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고 일제시대에는 한때 용화사로 불리기도 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절집이 소실되었는데 당시 천불전의 천불상이 녹아 내리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었다고 촌로들은 회고하고 있다. 1963년경에 대웅전과 요사채만이 중건되어 조용한 사찰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입구에는 불회사나 운흥사에 있는 돌벅수가 아닌 나무벅수 2구가 늙은몸을 힘겹게 가누고 있다.

 

천태산에서 바라본 개천산

 

천태산에서 바라본 화악단맥

 

개천사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가동리천태산(天台山)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828년(흥덕왕 3)당나라에서 남종선(南宗禪)을 이어받아 귀국한 도의(道義)가 가지산(迦智山)에 보림사(寶林寺)를 창건하고, 이어서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뒤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것을 중창하였고, 1907년(융희 1)호운(浩雲)에 의해 중건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용화사(龍華寺)라 했다가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6·25 때 천불전 등의 전각이 소실된 것을 1963년에 김태봉(金泰奉)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요사채 뿐이다.

 

이 절의 입구에는 두개의 장승이 절의 경계를 표시하듯이 서 있으며, 장승에서 10m의 거리에는 다섯 개의 부도가 있는데, 1766년(영조 42)의 청직당탑(淸直堂塔), 1808(순조 8)의 도암당탑(道庵堂塔), 19세기의 응서당탑(應西堂塔)·만봉당탑(萬峰堂塔)·지월당탑(智月堂塔) 등이다.

 

절 주위에는 온 산을 뒤덮고 있는 전라남도기념물 제65호 비자나무숲이 유명하다. 개천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828년(신라 흥덕왕 3) 도의(道義)가 창건하였다. 도의는 821년경 중국에서 남종선( 南宗禪)을 이어받았으며 귀국하여 먼저 가지산(迦智山) 보림사(寶林寺)를 창건한 뒤 이 절을 세웠다. 그러나 보림사는 도의가 죽은 뒤에 체징(體澄 : 804∼880)이 세웠다고 하므로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다시 중창하였다고 전할 뿐 조선말까지의 연혁도 전하는 바가 거의 없다. 《개천사중수상량문》에 따르면 1907년(융희 1) 법운(法雲)이 중건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용화사(龍華寺)라 불렀다. 이후 6.25전쟁 때 불에 탄 것을 1963년 김태봉(金泰奉)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요사 1동이 있다. 유물로는 절 입구에 장승 2기와 장승 곁에 5기의 부도가 있다. 부도 중 청직당탑은 1766년(영조 42), 광총( 廣聰)의 것은 1776년(영조 52), 도암당탑은 1808년(순조 8)에 만들어졌다. 1990년대에 옥불(玉佛)이 출토되었다고 하나 사라져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절 부근의 천태산비자나무숲은 전라남도 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되었다.

 

큰고개

 

느티나무 쉼터

 

안성리

 

안성리마을

 

안성마을회관

 

안성리 버스정류소에 도착하여 산행종료

 

목포로 이동하여 목욕을 하고

청호시장에 들려 장어탕으로 저녁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