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 분수령은 산은 스스로 물을 나누는 고개가 된다는 간단한 이치이나 생각을 하면 할수록, 엄청난 자연의 원리이다. 즉 물을 절대로 건너지 않고, 현재 장소에서 특정한 장소로 이동을 할 수 있고, 길은 오직 하나이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우리 집에서 친구 집까지 물을 건너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이다. 지리산에서 설악산까지 물을 건너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이고 이것이 백두대간이다. 물론 지리산에서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까지도 당연한 이야기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행정구역과 마을은 산자 분수령의 원칙에 따라 나누어져 있고 산행을 하면서 자세히 보면, 다소 잘못 나누어진(?) 마을과 철탑들을 볼 수가 있다.
산자 분수령의 원칙에 의해 나무군락의 형성, 비와 바람 등의 자연현상이 생기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이러한 산자 분수령의 원칙에 의한 기맥을 산행하면, 인간의 생각도 자연에 순응된다고 생각이 든다.
오늘은 영산기맥 3구간(암치재~밀재)을 다녀 왔다. 2구간에서 등로가 워낙 좋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도 고성산 오르막 길에서 조금 가시덩굴밭이 있었으나 나머지 구간은 정말로 좋았다. 그리고 편백숲이 자주 나타나 좋은 공기를 많이 마셨다.
다만 거리가 길어 산행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했지만 고창과 영광의 유명한 산들을 모두 올라 보고 온 뜻깊은 하루의 여정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시작이 반이라고 벌써 3개 구간이 끝났다. 무사히 완주하여 축배를 드는 그날까지 가는 그 길이 아름답고 행복한 길이길 소망해 본다.
▣ 산행위치 : 전북 고창, 전남 영광, 장성
▣ 산행일시 : 2019. 11. 07.(목)
▣ 기상상황 : 흐림(17℃~8℃ → 미세먼지 : 보통)
▣ 산행인원 : 목포다솜산악회 3명(피싱, 무니, 신기루)
▣ 주요산과 봉우리 : 고산(527m), 고성산(546.3m), 월랑산(458m), 태청산(593m), 장암산(482m), 분성산(318.2m)
▣ 산행코스 : 암치재(893지방도)-(1.25)-고산-(1.2)-가미치-(1.6)-고성산-(1.4)-깃재(816지방도)-(0.65)-마치-(0.7)-조리재-(0.6)-월랑산-(1.9)-몰치재-(0.5)-537.1m-(1.3)-태청산-(1)-마치-(0.65)-작은마치재-(1)-장암산-(1.1)-덤바위재(2차선도로)-(0.4)-분성산-(1.7)-연정재-(0.3)-273.2m-(0.3)-칠봉산-(0.9)-뱃재-(0.8)-가재봉-(0.6)-흰바위재-(1.55)-밀재
▣ 산행거리 : 24.9km(Gps 램블러 측정 기준)
▣ 누적거리 : 71.8km(접속 및 알바거리 포함)
▣ 산행시간 : 10시간 13분(휴식 및 점심시간 1시간 13분 포함)
▣ 교통수단 : 자가용 2대
▣ 산행지도 및 Gps 트랙
▣ 촬영사진
▲ 암치재에 도착
▲ 빈 공터에 주차를 하고 산행 시작
▲ 고산 등산안내도
▲ 가야할 고산
▲ 고산으로 오르는 마지막 계단
▲ 고산(527m)
고산은 전북 고창, 장성 전남 영광군에 걸쳐 있다. 산의 남쪽 계곡은 와탄천, 북쪽은 대산천으로 흘러가다가 법성포로 흘러든다. 높을 고(高)를 쓰는 이산은 고창 들녁에 높이 솟아 주면 조망대 역할을 한다.
아직까지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고창의 숨은 명산으로 세계문화유산인 선사시대 지석묘(고인돌) 300여 기, 후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알려진 고산산성(약 4.1km) 등 문화유적의 보고다.
기암괴석과 울창한 송림이 어우러지고, 용추굴, 각시봉, 깃대봉, 매바위, 용두암, 거북바위, 촛대봉, 치마바위 등 전설이 깃든 지명과 암봉들이 산행미를 더해준다.
또 천연 복분자인 산딸기 평전과 개구리와 곤충의 낙원인 늪지대등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된 곳이다. 고산은 비록 해발이 527m이나 평야에 위치해 있어 장수지역의 1,000m대 산과 어깨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350m까지는 육산으로 송림이 울창하고, 6부 능선부터는 고산산성이 있으며, 암봉과 산죽이 어우러져 산행미를 더해준다. 제1봉인 특징 없는 각시봉에 올랐다가 내려서면 자연지형을 이용해서 쌓은 토성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하다가 석성이 혼재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제2봉인 깃대봉에 닿으면 우측 상금 고인돌군으로 가는 하산로가 마중 나온다. 직진하면 용머리 모양의 용두암이 의연하게 눈앞을 가로막고 나선다.
용머리 형상의 용두암을 밧줄에 의지해서 오르면 전망이 훌륭하다. 남쪽으로 고성산, 월랑산, 태청산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어느새 제3봉인 띠꾸리(나뭇짐을 매는 끈)봉에 닿는다.
제4봉인 촛대봉에 닿으면 옛적에 상금리 주민들이 나무를 하고 숲을 굽던 구덩이가 나온다. 이곳부터 남쪽은 전남 장성군, 우측은 전북 고창군의 경계다. 우측 길은 가래재나 상금리 안부로 가는 하산로이고, 정상은 동쪽으로 0.6km의 산성을 따라 올라야 한다.
산성을 따라 걷노라면 주변이 온통 억새군락지다. 정상에 서면 사방이 탁 트여 조망이 훌륭하다. 북쪽엔 옥녀봉이 삼각형으로 솟았고, 그 아래는 암치저수지, 성송초교와 백토 마을로 하산하는 길과 고창과 영광을 잇는 23번 국도가 한눈에 잡힌다.
그 옆으로 구황봉과 문수산이 얼굴을 내민다. 서쪽엔 바둑판 같은 고창들녘이 다가온다. 청명한 날엔 광주 무등산과 담양 추월산, 영암 월출산까지 보인다고 하니 그야말로 고창의 조망대다.
정상에서 제4봉인 촛대봉으로 돌아와 두 형제 전설이 얽히고 물물교환의 통로였던 가래재 우측 안부로 내려서니 눈이 녹아서 길이 매우 미끄럽다.
다리품을 한참 팔다보면 우측은 천연복분자단지이고, 좌측은 드넓은 늪지가 나왔다. 우측으로 치마바위가 보이는 길가엔 300여 기의 고인돌들이 번호표를 붙인 채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옛날에는 지천으로 있었으나 농경지에 있는 고인돌들이 많이 훼손됐단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상금 마을 앞에 큰 지석묘 4기가 자리잡은 곳에 닿는다. 다른 지석묘와 달리 이 지석묘들은 북방식처럼 높은 돌기둥 위에 탁자처럼 거대한 너럭바위가 덮개석으로 올려져 있었다.
강형렬 회장은 많은 사람이 올라앉아 회의도 할 수 있도록 돼 있어 아마도 이 고을 지배자의 무덤일 거라고 유추했다. 주변의 지명은 평금, 상금, 중금 등 쇠 금(金) 자가 많아 금이 많이 생산되지 않았는가 싶다고 한다. 지석묘를 둘러보고 상금리 삼거리 느티나무 앞에서 대산면으로 향한다. (월간 산 4월호편집)
매년 1월 1일 고산 정상에서 해맞이 행사가 열리는데 500여명의 인파가 몰려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산아래 法雨禪寺에서 새해 첫 음식인 떡국을 전원에게 주고 풍물공연과 푸짐한 경품 추첨을 하여 행운을 나누어 주는 기쁨을 같이 나누며 주민 화합의 장을 만들고 있다.
▲ 촛대봉
▲ 편백숲을 지나는 모습
▲ 아름다운 편백숲이 참 많은 구간
▲ 고성산을 오르는 구간에는 잡목과 가시덩굴이 많아
등로를 찾아 가느라 시간이 좀 지체됨
▲ 지나온 고산
▲ 종합사격장
▲ 억새군락지
▲ 고성산(546.3m)
고성산은 호남지역의 산으로 높지도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편이다. 산맥의 방향에 따라 산세도 남북으로 주능선을 길게 늘어뜨리며, 양옆으로는 자잘한 지능선이 흘러 내린다.
산의 중턱부터 바위들이 아기자기하게 갖가지 동물모양을 띠며 등산객을 반긴다. 이런 암벽미는 정상까지 계속된다. 정상부근의 억새풀도 장관이다.
이 산은 이름에서 알수 있듯 고풍스런 산성(古城)이 산의 4부 능선쯤 남사면에 빙 둘러 축조되어 있는데, 지금은 대부분 허물어져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산성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해 내려오지 않아 언제 축조된 것인지 알 수 없다.
▲ 고성산에 있는 삼각점
▲ 기암괴석
▲ 고성산 아래쪽에서 치킨에더 막걸리 한잔
산에서 먹는 막걸리 맛은 최고였음
▲ 상무대
상무대는 대한민국 육군의 최대 군사교육 시설이다. 보병, 포병, 기계화(기갑), 화학, 공병 등 모두 5개의 병과 학교를 총칭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육군 교육 시설에 상무대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1952년이다. 이전까지 육군에는 1949년 세워진 육군보병학교등 각 학교들이 별도의 기관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1952년 1월 이들 교육기관을 상무대라고 이름 붙이면서 상무대가 정식 출범했다. 상무대란 ‘무(武)를 숭상하는 배움의 터전'이라는 뜻이다.
상무대는 대한민국 육군 전투력의 근간을 이루는 초급 간부들을 육성하는 산실이다. 중 육군보병학교의 표어는 "나를 따르라"이다. 상무대는 육군보병학교, 육군포병학교, 육군기계화학교, 육군공병학교, 육군화학학교 등 모두 5개의 학교로 구성돼 있다.
이들 5개 학교 모두 별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 학교들이 하나 둘씩 현재의 광주광역시로 이전하면서 광주가 상무대의 터전이 됐다.
1994년 보병, 포병, 기계화, 화학 등 4개 학교가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으로 이전했고 1995년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던 공병학교가 장성군으로 합류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의 부대 터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5·18 기념공원이 조성돼있으며 과거 부대의 정문이 있던 자리에는 상무대 표지석이 남아 있다.
보병 포병 기계화 공병학교는 야전부대의 사단장 계급인 소장이, 화학학교는 준장이 학교장으로 임명된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의 보병 병과라도 기계화부대에 소속된 장교와 부사관은 육군기계화학교에서 병과 교육을 받는다.
장교와 부사관, 훈련병 등 6,200명이 상주하며 부대 인근에 교육을 지원하는 1,350가구의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2011년부터 상무대는 문화체육 시설을 개방해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멋진 소나무
▲ 깃재
▲ 풍력발전단지
▲ 향유
▲ 아름다운 단풍
▲ 월랑산(458m)
▲ 태청산 3.3km 지점
▲ 헬기장
▲ 가야할 태청산
▲ 태청산 아래 정자
▲ 태청산 아래 헬기장
▲ 태청산 올라가는 계단
▲ 지나온 고성산
▲ 지맥길 아래쪽의 봉우리
▲ 태청산(593m)
영광에서 북동쪽 고창으로 이어지는 23번 국도에서 어디서나 동쪽이나 남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산이 태청산이다. 영광군 대마면과 장성군 삼서면 경계를 이루는 태청산은 영광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그래서 이 산은 영광이나 장성뿐만 아니라 고창, 함평 등지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산이다.
대마면 곡창지대의 젖줄이기도 한 태청산은 수량이 풍부하고 물 맛이 빼어나게 좋기 때문에 '대마막걸리'라는 명주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영광에서는 대마 막걸리 맛을 보지 않고 다른 술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할 정도다.
태청산은 산세가 육산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상과 주능선 일부에 마치 코끼리 몸에서 상아가 돋아나듯 바위지대가 돌출되어 있어 경관을 한층 더 아름답고 돋보이게 한다. 정상에 오르면 영광에서 제일 높은 산임을 상징하듯 광활한 조망이 전개된다.
▲ 지나온 태청산
▲ 급경사 내리막 구간
▲ 마치재
▲ 작은마치재
▲ 가야할 장암산
▲ 이상 현상으로 핀 진달래
▲ 샘터삼거리
샘물은 먹을 수 없음
▲ 장암지맥분기점
▲ 장암산(482m)
굴비의 고장 영광군의 장암산은 산 이름이 그렇듯이 펑퍼짐한 초원을 이룬 정상에 너럭바위가 있는데 그 모습이 옆에서 보면 마치 물위를 떠가는 조각배를 닮아 신기하기만 하다.
더욱 기이한 것은 이웃하고 있는 태청산은 이따금 눈에 띄는 단단한 바위들이 모가나 날카로운데 비해 장암산 정상에 덩그러니 올려 놓은 듯한 바위는 조각작품처럼 매끄럽게 다듬어 놓은 것 같아 맨발로 올라 앉아도 괜찮을 정도다.
장암산은 훌륭한 등산코스일 뿐만 아니라 행글라이더 들에게도 인기가 대단하다. 그만큼 정상에 오르면 마치 비행기를 타고 하늘 위에 떠있는 기분에 휩싸일 만큼 시원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북으로는 대마면 들판 너머로 고창군 곡창지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대마면에서 오른쪽으로 하늘금을 이루는 태청산과 월랑산 풍광도 일품이며 남으로는 불갑산으로 내다르는 산릉이 첩첩산중을 이루어 장암산에 오른 보람을 만끽하고도 남는다.
▲ 장암산 너럭바위(마당바위)
옛날 장암산 기슭 아랫마을에 고관집 아들과 가난한 농부의 딸이 애틋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신분의 고하에 따라 집의 규모도 다른 시절이라 남녀는 양가 집안 몰래 장암산으로 도망하여 너럭바위에서 사랑을 속삭였다고 한다.
두 손을 마주 잡고 어떤 상황에도 헤어지지 말 것을 다짐하며 서로 껴안은 순간 희미한 안갯속으로 지팡이를 짚은 힌 수염의 산신령이 나타나 바위를 세 번 두드리며 삼일 동안 바위를 붙잡고 사랑을 속삭이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삼일을 견디지 못하면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주문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이에 남녀는 산신령님이 알려 준대로 참꽃(진달래)을 따 먹으며 삼일을 견뎌내 결국 연을 맺게 되었으며 연인이 속삭였다던 너럭바위는 당초 두 명이 앉을 만큼 작았으나 산신령이 바위를 세 번 치자 십여 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로 커져 마당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선남선녀들이 너럭바위에 앉게 되면 사랑의 결실이 맺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 장암산 정자
▲ 이상 기온 현상으로 장암산에도 핀 진달래꽃
▲ 쑥부쟁이
▲ 장암산 정자 아래서 점심식사
김밥도 맛있고
쭈꾸미라면도 맛있고
커피도 맛있었는데
쇠주가 없어서 서운 ㅎㅎ
▲ 장암산 숯가마
▲ 사동고개
▲ 상무대
▲ 산죽밭도 지나고 험난한 여정
▲ 분성산 정상석
▲ 선답자들의 반가운 리본
▲ 실물폭파위험장으로 위험
▲ 흰바위재
▲ 가재봉(281.6m)
▲잘꾸며 놓은 묘지
▲ 밀재 버스정류소
▲ 밀재에 도착하여 산행 종료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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