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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트레킹&하이킹&여행

고하도용오름길~고하도국기봉~고하도해안데크~고하도전망대~고하도이충무공유적

고하도(高下島)는 전라남도 목포시 관할 섬으로, 목포 앞바다에서 약 2km 떨어져 있다. 고하도와 북항을 잇는 목포대교 2012년 6월에 개통되어서 육지와 이어지게 되었다.

고하도 이충무공 유적

고하도 이충무공 유적지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정유재란 때인 조선 선조 30년(1597) 10월에서 다음 해 3월까지 머물면서 군량미 및 군수물자를 모아 전쟁에 대비하던 곳이다.

 

장군은 이곳에 돌로 남·서 길이 1㎞, 높이 2m, 폭 1m의 성을 쌓아 적의 배를 구별하고,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오가는 배들에게 1∼3석의 식량을 내어 놓고 통행첩을 받아가도록 하여 열흘 만에 일만 석의 군량미를 비축하였다.

 

또한 이곳에서 무기와 배를 만들며 전열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모충문

 

고하도 이충무공 기념비

이순신 장군은 명량대첩 뒤에 군산 앞바다의 고군산도(古群山島)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1597년(선조 30) 10월 29일에 이곳 고하도(高下島)로 진을 옮겼다.

 

고하도는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2㎞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 조그만 섬이다.

 

조선시대에는 나주목(羅州牧)에 속했으며, 비문에는 고화도(高和島), 『난중일기(亂中日記)』에는 보화도(寶花島)라고 표기하였다.

 

서남해안의 바닷길과 영산강의 내륙 수로가 연결되는 지점으로 지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이 섬의 지형은 서북쪽이 병풍처럼 높이 솟아 있어 겨울에 북서풍을 막아줄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배를 감추기에도 적합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이순신은 수군 재건에 필수적인 전선 건조와 군량 모집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지리적 위치가 서해 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남해에서의 해상 활동에 적절하지 못한 약점이 있었다.

 

또한 섬이 작아 곡물 생산이 적었고, 유입된 백성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이듬해인 1598년(선조 31) 2월 17일 완도(莞島) 동북쪽에 위치한 고금도로 통제영을 옮겼다.

 

주둔 기간은 총 108일간이었다.

 

고금도진으로 옮겨간 이후 고하도진에는 별장(別將)이 배치되었다가 1647년(인조 25) 고하도진마저 당곶(唐串, 현재 전라남도 목포시 하당 일대)으로 옮겨 감에 따라 폐진 되었다.

 

선착장에서 약 200m 떨어진 당산에 1722년(경종 2)에 세운 유허비가 있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고하도는 드론 비행금지 구역

 

보행약자의 이동편의를 위해 고하도 해상데크 진입 경사형 엘리베이터 설치 작업

 

고하도전망대

고하도전망대는 이충무공이 명량대첩에서 승리 후 전열을 가다듬었던 고하도에 13척의 판옥선 모형을 격자형으로 쌓아 올린 전망대다.

 

고하도에 아름다운 해상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로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며, 충무공의 얼을 담고 교육 및 관람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1층은 휴게공간, 2~5층은 전망대 및 목포관광을 소개하는 전시공간이다.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고하도 국기봉의 삼각점

 

고하도 용머리

 

목포대교

 

고하도에서 바라본 유달산

 

용의비상

 

고하도 해안해상데크

 

개선장군 이순신

 

거북선

 

줌으로 당겨본 세월호

 

큰덕골 저수지에 물이 완전히 마름

 

고하도 복지회관

 

주차장 화장실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