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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얘기

계사년(癸巳年) 한 해의 끝자락에서

예외없이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수식을 꼬리에 단 채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사람들 옷차림에서 계절이 바뀜을 감지할 수 있듯이 겨울의 스산한 풍경 속에 울려퍼지는 구세군 자선남비의 종소리가 2013 계사년(癸巳年)의 마감을 실감케 한다.

 

한 살씩 나이를 먹을수록 한세상을 살아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인생이란 무엇이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며, 또 어떻게 사는 것이 참다운 삶이냐고, 일찍이 인생의 선배들이 던져준 삶의 질문에 대하여,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지금에도 이렇다 할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쉽사리 정체를 보여주지 않는 현실이란 심연(深淵) 위를 무서운 줄도 모르고 그저 바삐 넘나드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가슴이 답답해지곤 한다.

어릴 적부터 인간이 이성을 지닌 만물의 영장이기에 여늬 동물과 비교한다는 자체를 불경스럽게 여기며 살아왔던 까닭에 인간이 금수와 별로 다를 게 없다고 한 맹자의 깊은 의중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익이 있는 곳이라면 마치 과자 부스러기를 보고 모여드는 개미떼처럼 집요하고 때로는 탐욕스럽게까지 느껴지는 현실 속의 인간군상을 볼 때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시금 되뇌이다 가끔씩 동물 쪽이 훨씬 정직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사나운 맹수라도 배부르면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고, 번식기가 아니면 서로 탐내지 아니하는 동물의 세계에서 오히려 처절하리만큼 절제된 생존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다.

 

우리 인간의 욕망은 정말 끝도 없이 얽힌 실타래 같다.

그렇다고 하여 이익이나 인간의 욕망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인간이 이처럼 욕망의 덩어리로 변한 것은 삶이 힘든 탓도 있겠지만, 아마도 자연의 소리를 잊었기 때문이리라.

 

생명을 지닌 것들은 모두 자연에서 태어나고 자연의 한 부분을 잠시 빌려 살다가 언젠가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게 자연의 법칙이요 순리다.

사사로운 욕심에 가리워 져, 자연이 우리를 향해 항상 들려주는 생명의 소리와 소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된 게 그 원인임에야.

자연의 도리는 공평무사하여 남는 것을 덜어다가 모자란 것을 채워준다.

그래서 자연에는 어디를 보아도 군더더기가 없다.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 욕심이란 군살이 끼어 들 여지가 없다.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자연을 둘러보면 우리네 세상살이가 좀 더 따뜻하고 아름다워지련만...

 

논두렁 위에 쌓아둔 노적가리 사이로 스쳐 가는 바람소리, 저녁나절 갈대 숲 둥지로 찾아드는 들새들의 지저귐, 마른 떡갈나무 잎새에 떨어지는 빗방울소리, 가을을 예찬하는 풀벌레의 노래향연, 잔잔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는 물고기의 파닥거림, 비 개인 초겨울 오후 포도위를 구르는 낙엽소리, 철을 잃고 찬서리 맞으며 피는 봄꽃 소리, 포말로 부서지는 싱싱한 파도소리, 온정의 손길을 기다리는 자선남비의 종소리, 우리 마음 속의 양심의 소리 등등,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귀기울이면 언제 어디서나 들려오는 자연의 메시지들.

 

눈 앞의 이익만을 쫓아 바람개비 돌리듯 교묘히 권모하고 술수하며 살다보면, 언젠가는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다. 자업자득이요, 인과응보라는 말도 그런 이치를 깨닫게 하고자 선조들이 만들어낸 말이 아니던가.

 

세상사는 이치가 이렇듯 어긋남 없이 엄숙하고 아름다운 진데, 어찌 내가 속해 있는 사회는 함부로 경거망동하며 자연의 순리와 세상사 이치를 거스르는 인간들이 많은 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조금씩만 양보하고 서로 배려하면서 겸허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새벽을 달려 다다른 바닷가를 거닐며 높은 하늘, 푸른 바다, 맑은 공기 사이로 울려 퍼지는 다함없는 자연의 소리를 듣노라니 나를 어지럽힌 모든 존재들을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는 평정심을 되찾는다.

 

2014 갑오년(甲午年) 새해에는 불신도 다툼도 혼란도 없는 오직 사랑과 믿음과 희망으로 가득찬 지역이 되기를 소원하며, 더불어 동행하며 이로움을 더하고 나눔으로 행복을 준 내 지인들께 지면으로나마 감사의 뜻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