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 2016. 02. 10(수)
▣ 기상상황 : 대체로 맑음
▣ 산행장소 : 국사봉(283m), 대봉산(252.3m)
▣ 행정구역 : 무안군 삼향면 유교리
▣ 산행인원 : 그림자 벗삼아
▣ 산행코스 : 애중원쉼터가든~지산리삼거리~감돈리삼거리~유달학생야영장삼거리~국사봉산불감시초소~국사봉헬기장~국사봉~대봉산~죽림마을~석교마을~청룡마을~애중원숨터가든(원점회귀)
▣ 산행거리 : 10.91km(산길샘 Gps 기준)
▣ 산행시간 : 2시간 18분(휴식시간없이 사진촬영하며 보통걸음으로)
▣ 이동수단 : 자가용
▣ 산행후기
설 연휴가 5일이나 되었지만 어느새 다 가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오늘도 오후에 가족들과 함께 어디를 가야할 일이 있어 멀리 가지도 못하고 집에서 가까운 무안군 삼향읍 유교리에 있는 국사봉과 대봉산을 찾았다.
柳橋里는 삼향면소재지에서 3㎞ 가량 떨어져 있다. 중등포에서 좌회전하여 전남예술고등학교를 지나 1㎞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동으로는 관동저수지, 서로는 중등포 간척으로 생긴 농경지가 있다. 이곳은 본래 나주군 삼향면 지역으로 버드나무 다리가 있으므로 유교 또는 유교동이라 하였다.
1895년 무안군에 편입되었고 1910년 목포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군산동, 석정리, 성재동, 운악동, 청룡동, 석교리, 운흥동과 원동, 중등포 응석동의 각 일부를 합하여 유교리라 해서 다시 무안군에 편입되었다.
2007년에 유교2리에서 분리된 관동 마을과 함께 현재는 석교, 청룡, 군산동, 유교, 중등포, 원동, 관동 등 7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유교 마을에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전통가옥인 나상열 가옥과 침계정이 있으며 군산동에 애중원과 나주임씨 제각 영유재가 있다.
주변에 산이 많아 유래된 이름 군산동은 유교6리에 해당하는 마을로 주변에 산이 많아 유래된 지명이다. 삼향면의 제일봉인 국사봉을 주산으로 하고 있으며 깊은 계곡 속에 자리 잡았다. 얼마나 깊숙한 골짜기였든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100개의 골짜기에서 1개의 골짜기가 없어 호랑이가 살지 않는 계곡이라는 말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문헌으로 본 지명의 유래는 1789년의 자료인 호구총수에는 나주목 삼향면 郡山으로 나오지만 세종실록지리지엔 群山으로 나온다. 1912년의 자료엔 무안군 삼향면 群山洞으로 1917년의 자료엔 무안군 삼향면 유교리 群山洞으로 나온다. 이후 현재까지 群山洞으로 쓰고 있다.
이 마을의 입향조는 임 보(자-광보, 1627년 9월-1712년 3월)다. 나주 임씨 족보를 보면 임 보가 어머니를 모시고 나주 회진에서 할아버지인 동리공 임 위의 묘소가 있는 이 마을로 들어 온 것으로 추정된다. 무안군 유래지에는 먼저 김해김씨(김명효, 1722년)가 들어왔다고 하나 연대를 추정해 본 결과 나주 임씨보다는 늦다. 현재는 김해김씨가 한 세대도 살고 있지 않다.
또한 유래지에는‘나주 임씨 임기상이 350여 년 전에 마을 주변 산세가 수려하다 하여 나주에서 이주하여 정착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이도 틀린 기록이다. 왜냐하면 임기상(자-계현, 1821년 5월-1870년 1월)은 이 마을과 관련된 흔적을 찾을 수 없으며 주민들도 모를 뿐 아니라 연대도 200여 년밖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마을은 花蟹弄珠(화해롱주-게가 구슬을 희롱하는 형국)의 지세를 갖고 있다. 승달산의 지맥인 국사봉에서 힘차게 내려오는 줄기가 촛대봉을 만들고 마을을 지나 筆鋒(주민들은 피리봉이라 부른다)을 형성하고 있다. 마을은 촛대봉과 필봉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데 마을 앞에는 게의 눈이라고 말하는 자연석이 두 개가 놓여 있다. 또한 지금은 없지만 두 개의 돌 사이에 구슬로 여겨지는 둔덕이 있었다고 한다.
원래 이 마을은 수원지 위 국사봉 8부 능선에서 비롯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이곳에 수원지를 조성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내려온 것이다. 지금도 그 자리엔 당시의 집터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국사봉(283m)은 삼향면의 주산으로서 승달산의 큰 줄기가 영산강을 향해 힘차게 뻗어 내리면서 형성한 맥이다.
일본인들은 이 산이 명산임을 시기하여 기슭에 두 개의 수원지를 조성하고 봉우리를 무너뜨리면서 혈을 자르기도 하였다. 주민들은 가뭄이 들 때 국사봉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그 정성을 하늘이 감응하여 반드시 비가 내렸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목포 사람들의 식수를 해결한다는 이유로 이 마을 뒤에 2개의 수원지를 건설하였다. 하나는 제3수원지로 1913년에, 다른 하나는 제4수원지로 1928년 3수원지 옆에 건설하였다. 현재 이 수원지는 이용하지 않고 있으며 모두 개인 소유가 되었다.
국사봉 아래에 있는 임 복의 손자인 동리공 임 위(자-평중, 호-東里 1597-1668)의 묘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 背山臨水에 좌청용 우백호의 짜임새가 어떤 형태의 명당보다 잘 잡혀져 있어 전국의 지관들이 반드시 답사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특히 이 묘소 주위에만 적송이 쭉쭉 뻗어 자라고 있어 주민들은 명당의 기운이 살아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마을에 나주임씨 제각인 영유재가 있다. 이 제각은 임 위를 모신 제각으로 정면 4칸에 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이며 안에 두 개의 현판이 있다. 제각 옆의 제물을 마련했던 집도 구조가 특이하다.
이러한 명당과 산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이 마을 출신들은 생활에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 없으며 출향 인사들은 대부분 잘 되었다고 한다. 또한 도둑을 당해 본 집이 없으며 주민들의 화합이 잘되 주민들의 큰 소리가 담장을 넘은 적이 없다고 한다.
이 마을은 논농사보다도 딸기와 토마토 농사가 주 소득원이다. 주변 환경을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환경을 그대로 이용해 마을을 가꾸고 있으며 마을에 축산농가가 한 농가도 없어 말 그대로 청정지역이다. 해서 마을 앞을 지나는 개울물을 그냥 떠서 먹을 수가 있다고 한다. 주민들은 외지 사람들이 이 마을에 들어오려고 줄을 섰다고 한다고 자랑한다.
60년대 이 마을의 벚꽃은 장관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수원지 주변에 심은 나무라 한창 꽃을 피울 때이기도 하겠지만 벚꽃이 피면 목포시 대안동에서 마을까지 인파로 넘쳐 주민들이 봄철 내 시달렸다고 한다. 지금은 수원지 벚꽃이 조금 시들해졌지만 아직도 봄철에는 주변 산야에서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 또한 일품이다.
지금은 목포에서 시내버스가 다니고 있어 생활이 편리해졌으며 이 마을이 종점이다. 마을 앞에 제자들이 세운 ‘무은처사나주임공종옥경모비’가 서 있다. 남아 있는 지명으로 바람실[風谷] 한적골 석정 서태 응달 떡골 등의 지명이 있다.
국사봉과 대봉산 등산로는 푹신푹신한 흙길이고 산의 높이가 그리 높지않아 목포산꾼들이 잠깐 짬을 내어 자주 찾는 곳으로 종주를 하더라도 2시간 30분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많은 산꾼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따라서 오늘은 종주를 하더라도 거리가 얼마되지 않을것 같아 국사봉과 대봉산을 거쳐 나름의 둘레길을 걷고 온 행복한 여정이었다.
▣ 산행지도 및 고도표
▣ 산행사진
애중원쉼터가든주차장
등산로를 따라 산행시작
국사봉과 대봉산의 모습
흙길의 등산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대봉산
지산리삼거리
감돈리삼거리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승달산
가야할 국사봉
또다시 바라본 승달산
유달학생야영장삼거리
국사봉 산불감시초소
국사봉 헬기장
국사봉 정상의 삼각점
가야할 대봉산
대봉산 정상
죽림마을로 하산
일로 전봉산 전경
죽림마을
석교마을회관
청룡마을
향토문화재 12호 침계정
애중원
애중원쉼터가든
애중원쉼터가든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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